외할아버지의 기록
05/06/2020
/ 이해영

외할아버지는 생화학 분야에서 처음으로 복어 독의 화학분자식을 완성하시고, 짧은 기간에 일본의 큐슈대에서 의학박사 학위를 받으셨다고 하였다. 그리고 한국에 돌아오셔서 서울여의대에서 교수로 계시다가, 6.25 전쟁 중에 북에서 병원의 모든 의사를 다 버스에 실어가는 바람에 납북이 되셨다. 결국 우리는 외할아버지의 생사도 모르고 지금까지 지내왔다. 실려가던 의사들 중에 신혼이던 어떤 분과 북에서 월남하셨던 다른 한 분만 화장실 창문을 통해 탈출을 하셨고, 외할아버지를 포함한 다른 분들은 모두 그렇게 남쪽 가족들과 평생 헤어질지는 전혀 생각지 못하고 버스에 실려가셨다고 들었다. 

외할아버지는 우리 가족에게 전설과 같이 남아계셨다. 중학교 다닐 때 엄마가 외할아버지 친구분 댁에 가시면서 나를 데려가신 일이 있었다. 할아버지 친구분한테 들은 외할아버지 얘기는 내가 좋아하던 위인전에 나오는 일화 같았다. 외할아버지가 얼마나 공부를 열심히 하셨는지, 같은 대학에서 공부하던 한국 분이 밤이 늦은 시간에 학교에서 나오면 늘 할아버지가 계시던 연구실에 불이 켜져 있는 것을 보았는데, 어느 날은 정말 늦은 시간이어서 본인이 그날은 제일 늦게까지 학교에 있었을거라고 생각하고 나왔는데, 외할아버지가 연구하시던 방은 여전히 불이 켜져 있어서 정말 놀랐었다고 하는 얘길 들었다. 그렇게 해서 외할아버지는 박사학위를 2-3년 만에 마치셨다고 하였다. 그러나 우리는 단지 그렇게 남은 얘기로, 그리고 오래된 사진 한 장으로 할아버지의 지적이고 미남이었던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을 뿐이었다.

그러다 몇 년 전 막내 남동생이 외할아버지가 공부하셨던 큐슈대에서 열린 학회에 가게 되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할아버지 성함으로 큐슈대 의대 도서관에 1944년 외할아버지가 박사학위를 받으셨던 논문이 있는가 알아보았다고 했다. 사실 논문이나 한번 확인할 수 있으면 하는 마음에서 몇 가지 물어보았을 것이다. 그런데, 몇 주 후 놀랍게도 외할아버지의 학위 신청서, 이력서, 학위논문심사 요청서 및 교수회의 기록, 학위청구심사결과, 학위 수여에 대한 인가서, 학위부 등의 복사본이 우편으로 동생에게 도착하였다. 

보내온 기록의 복사본에는 사진처럼 한글을 아는 큐슈대 사서가 일일이 한글로 포스트잇에 내용을 간략히 소개하는 메모를 붙여 보내주었다. 60년 넘게 잘 보관된 것만도 대단한데 게다가 감동적인 서비스까지, 정말 우리 모두에게는 놀라운 큰 선물이었다. 할아버지의 단정한 필체를 볼 수 있는 것도 우리에겐 큰 기쁨이었다. 한 번도 뵙지 못해 추상적으로만 우리에게 인식되었던 할아버지의 삶에 성큼 들어서서 정말 할아버지의 존재감을 사실적으로 느낄 수 있는 경험이었다. 

어쨌든 큐슈대가 큰 전쟁을 겪으면서도 그런 기록들을 잘 만들어 보관하고 있었다는 사실도 놀랍고, 그걸 찾아서 복사해서 보내준 서비스 정신도 참 대단하다 싶었다. 이래서 일본에 25명의 노벨상 수상자가 나올 수 있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들 같이 기록학 분야에서 일하거나 공부하는 연구자들에게 큰 귀감이 될 본받을만한 사례라고 생각되었다. 

그렇게 기록은 남아서 증거가 되고, 정보가 되고, 뒤에 남은 이들에게 연구의 자료도 되며, 역사의 일부가 된다. 특히 사진이나 문서 등이 그걸 찾는 사람들에게 얼마나 큰 감동이 될 수가 있는 것인지, 정말 겪어보니 잘 알 수가 있었다. 우리도 그렇게 기록에 생명력을 불어넣을 수 있도록 다양한 노력을 하면 좋겠다. 필요로 하는 사람이 기록을 쉽게 찾도록 하고, 존재를 모르는 사람들에게 기록이 있음을 알려 주기도 하고.. 우리가 기록으로 할 수 있는 일은 참 많다. 때때로 생각하지도 못했던 누군가에게 이런 감동을 줄 수 있다면 정말 보람되지 않겠는가.

이해영 (명지대학교 기록정보과학전문대학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