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호의 답사 스케치12 – 광주와 마곡에서 미디어 아티스트 이이남을 만나다
04/30/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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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랜만에 광주 무등산의 잔설(殘雪)을 만났다. 봄물이 오른 연녹색과 황갈색 톤의 산기슭부터 정상의 눈 쌓인 정경까지, 지난 20여 년간 광주에 살며 눈에 익었던 추억을 되살려 주었다. 넉넉하게 열린 무등산의 품세는 여전히 아름다웠고, 화폭에 담기가 쉽지 않았다. 지난 3월 11일 광주의 예술인 마을 양림동 이이남 작가의 새 작업실 창으로 든 무등산 정상이 그랬다. (도 1, 2) 광주를 찾은 것은 서울식물원 마곡문화관이 기획한 “이이남, 빛의 조우”(2019. 11. 21.~2020. 4. 19) 전시회에 대한 도록의 평문을 쓰기 위해서였다.

 이이남 작가는 우리시대 미디어 아티스트로 명성을 얻었다. 동양과 서양, 고대와 현대를 넘나들며, 익숙한 이미지를 새롭게 흥미를 끄는 다양한 콘텐츠로 디지털 예술세계를 펼쳐왔다. 세상, 현실, 역사, 환경 등의 문제, 종교, 인간에 대한 성찰과 고뇌를 재미있는 연출과 구성으로 버무려왔다.

 미디어아트, 디지털 민중미술, 디지털 팝아트, 포스트 모더니즘 등 여러 사조와 경향이 혼재한 이이남의 작업은 20세기 후반 비디오아트 창시자로 꼽히는 백남준을 잇는 것으로 평가된다. 중국과 아시아를 넘어 미국과 유럽의 미술관이나 갤러리에서 초청하는 기획전과 개인전을 가졌고, 2016년 벨기에에서 우리 시대 비디오아트의 거장이자 전설 빌 비올라와 2인전은 이이남 예술사의 정점으로 꼽을 만하다.

 이이남의 디지털 혼성이나 이미지 변환 작업은 놀랍게도 이이남도 즐겨 다룬 겸재 정선의 진경산수 변형화법과 유사하다. 예컨대 여러 시점의 봉우리나 계곡을 한 화면에 합성하는 <금강전도>의 다시점(多視點) 합성방식은 몽타주(montage)에 해당하고, <박연폭도> 처럼 폭포의 천둥소리를 담기 위해 화면을 길게 변형한 화법은 모핑(morphing)과 흡사하다. 그래서 나는 겸재 정선이 지금 활동한다면, 아마 이 시대 최고의 디지털 작가가 되리라고 말할 정도이다.

  도록 제작이 늦게 결정되어 코로나 사태 한참 때 움직이게 되었다. 그 바람에 인적이 드문, 남도에 가득한 봄기운을 만끽했다. 청매와 홍매와 목련꽃들이 한창이었고, 청보리밭이 온통 봄을 뽐내고 있었다. 광주와 담양 죽녹원 이이남의 미디어 작품전시관 ‘이이남 아트센터’를 오가며 카메라에 담았다. 담양 추월산 실루엣을 그리고, 해지는 병풍산을 담았다. (도 3, 4)

 광주의 작업실과 담양 죽녹원 가까이 작품전시관을 왕래하기 부담스러워, 명지대학교 대학원생 하휘구의 승용차를 대절해 다녀왔다. 대학원에 신입생으로 입학했으나, 학교에 가지 못하는 안유현 씨와 석다희 씨가 동행했다. 석다희 씨는 덕성여자대학교 대학원생이다. 뜻하지 않게 반가운 김자우 박사와 이지윤 숨 대표가 이이남 작가를 만나러 왔기에, 합류해 저녁 식사를 하며 이이남의 작품세계를 토론했다.

  그리고 3월 14일 이이남의 작품들을 살피러 마곡문화관 전시실을 다시 찾았다. 이때 마곡문화관의 원모습인 배수펌프장과 주변을 둘러보며, 물이 빠져나가는 수문 위로 오래 묵은 버드나무가 자라 있어 스케치해보았다. (도 5, 6) 또 멀리 궁산과 강 건너 행주산성이 한눈에 드는 명소이다. 양천의 역사와 맞닿은 이이남의 2019년 신작 <다시 태어나는 빛, 양천(Reborn Light, Yangcheon)>을 비롯해, 다섯 점의 디지털 작품들은 전시장으로 변신한 마곡문화관에 맞춤 같았다. (도 7, 8, 9) 아래에 이이남 전시 도록에 쓴 내 글을 첨부한다. 

 

디지털 이미지의 혼성과 겸재 정선의 진경산수화법

– 마곡문화관이 기획한 이이남, 빛의 조우전시를 보며

 1.

 작년 11월 중순이다. 강서구에 소재한 서울식물원 마곡문화관이라며, 정수미 학예연구사에게 전갈이 왔다. 이이남(李二男) 개인전 오픈에 참석해달라는 초대였다. 축사도 해주고, 도록의 글도 써달라는 거였다. 

 서울식물원 북쪽의 마곡문화관은 언뜻 오래된 방앗간처럼 보였다. 콘크리트 구조물 위에 지은 목조건물로, 옛 배수펌프장이었다. 1925년 여름 이른바 을축년 대홍수를 치른 뒤, 양천수리조합이 곡창지대인 김포 마곡평야의 물을 조절하기 위해 1927~8년에 지었단다. 마곡문화관은 국가등록문화재 제363호(문화재명 : 서울 구 양천수리조합 배수펌프장)로, 2018년 문을 연 서울식물원이 관리하고 있다. 맨 아래층 원통형 배수시설들을 보존하고 유리 바닥으로 마감해, 멋진 문화공간이 재탄생한 것이다. 

마곡문화관은 북쪽으로 궁산 기슭 겸재정선미술관과 개화산 사이에 배치되고, 강 건너에는 덕양산 행주산성이 한눈에 들어온다. 지금은 빌딩 숲으로 가려졌지만, 나지막한 발산과 조금 높은 우장산이 너른 평야 남쪽으로 흐르는 형국이다. 동쪽으로는 한강 너머 북한산세가 펼쳐져 있다. 계양산이 자리 잡은 서쪽 들에는 호수공원도 조성하여, 서울식물원과 마곡문화관은 강서구의 명소로 사랑받을 법하다. 

이곳에서 우리 시대를 대표할 미디어 아티스트 이이남의 작품들이 전시되니, 색다른 기대심이 앞섰다. 이이남은 이곳 고을 수령이었던 겸재 정선의 대표작품 <금강전도> <인왕제색도> <박연폭도> 등을 디지털로 소화한 작가였기 때문이다. 

겸재 정선(謙齋 鄭敾, 1676~1759)은 1740년 양천현령으로 부임해 1745년까지 역임했다. 수령 재임 기간에 한강을 유람하며 명소를 담은 ≪경교명승첩(京郊名勝帖)≫(1740~41년, 50년경, 간송미술관 소장), ≪양천 8경첩≫(1740~45년, 김충현 구장), ≪연강임술첩(連江壬戌帖)≫(1742년, 개인 소장) 등을 남기며, 개성적 회화예술의 기반을 이룩했다. 이를 기념해 양천 관아터 근처에 겸재정선미술관이 건립되었다.  

이이남 작가의 기발하고 새로운 화면을 궁금해하며 마곡문화관에 다가섰다. 흰 천에 LEE LEE NAM이라는 고딕체를 중심으로 ‘서울식물원 마곡문화관 기획전, “이이남, 빛의 조우”, 2019. 11. 21.~2020. 4. 19.’이라는 알림 배너가 걸려 있었다.

  

2. 

전시장 남쪽 문을 들어서자 왼쪽 벽면을 가득 채운 8개의 화면이 눈에 띄었다. <다시 태어나는 빛, 양천(Reborn Light, Yangcheon)>이다. 기둥 사이 8개 화면은 가로 12미터의 폭에 높이 2.4미터로, 8개 풍경이 절묘하게 기둥과 기둥 사이 8간 벽면과 맞아 떨어진다. 화면의 반대편에서 이미지를 쏟아내는 빔프로젝터는 4대이다. 프로젝터 1대당 2개 화면을 그려낸다. 겸재 정선의 양천 8경도 화면부터 전체 동영상은 19분 37초이다. 이이남 작가가 지역 문화의 역사와 공간을 맞춤으로 준비한 초대형 가작이다. <다시 태어나는 빛, 양천(Reborn Light, Yangcheon)>이 여기 마곡문화관의 얼굴로 이대로 보존 전시해도 명물이겠다. 

<다시 태어나는 빛, 양천(Reborn Light, Yangcheon)>은 겸재 정선의 ≪양천 8경첩≫(비단에 수묵담채, 각폭 33.3 x 24.7 cm)의 여덟 장면이 화면 가득 채워지면서 시작된다. 양천현령 시절인 1740~45년 사이에 그린 화첩으로, <개화사(開花寺)> <낙건정(樂健亭)> <귀래정(歸來亭)> <소악루(小岳樓)> <소요정(逍遙亭)> <이수정(二水亭)> <선유봉(仙遊峯)> <양화진(楊花津)> 8점으로 꾸며져 있다. 서예가로 유명했던 고 일중 김충현의 소장품이었다.

방화의 개화산 중턱 북향으로 앉은 <개화사(開花寺)>는 현재 약사사이며, 고려 시대 석탑과 석불이 모셔진 고찰이다. 양천 관아의 <소악루(小岳樓)>가 세워진 궁산은 고구려와 신라의 유적지로 알려져 있다. 궁산과 마주한 행주산성의 덕양산 기슭 <낙건정(樂健亭)>과 <귀래정(歸來亭)>, 광주바위와 공암 탑산의 <소요정(逍遙亭)>, 안양천이 한강에 합류하는 언덕의 <이수정(二水亭)> 등은 조선 초기 왕자부터 중후기 문인 사대부까지 강변 문화를 즐겼던 풍류 터이자 명승지였다. 지금은 사라진 <선유봉(仙遊峯)>이나 잠두봉 아래 <양화진(楊花津)>은 양천현령이었던 겸재 정선의 통치권이 미친 곳이다.

이들 겸재 정선의 8점 그림은 소품임에도 대형 화면에 확대해 비쳐도 작품성에 손색이 없다. 이이남은 ≪양천 8경첩≫이 명작임을 재확인시켜 준다. 

8경이 조용히 움직인다. 한강 물결을 따라 돗단배나 조각배가 움직이고, 강변 길목에는 나귀 타고 가는 사람이 등장한다. 이는 맞은편 <겸재 정선 고흐를 만나다>의 오른쪽 화면 <설평기려>에서 이동해온 겸재 정선이다. 흰 도포 차림의 문사가 소악루에 출현하며 봄 매화와 진달래를 즐긴다. 연한 녹음 풍경에 안개가 아스라이 깔린다. 이수정으로는 큰 호랑나비가 날아 움직인다. 봄 경치에 빗방울 떨어지며 여름으로 변하고, 소요정으로 호랑나비와 나비 떼가 이동하며 가을 단풍이 물든다. 늦가을 눈이 내리며 겨울로 진입한다. 폭설의 겨울밤 별이 뜨고 이수정에 북두칠성이 반짝인다. 선유봉과 소악루의 눈 쌓인 설경에 유난히 별이 빛난다. 나귀 탄 인물이 여기저기 지나다니며, 겨울밤이 지나 일출의 아침을 맞는다. 이렇게 양천 8경의 4계절이 소리 없이 지나간다. 

조선 시대 자연 풍경을 담은 산수화 양천 8경의 원화 이미지가 사라지고, 제2막으로 전환된다. 깜깜한 어둠에서 물결이 솟고 가라앉으며, 도시가 출현하거나, 그물망이 융기하고 침잠한다. 거대한 파고는 서해로 빠져나가는 한강 물결을 연상시킨다. 검정 바탕에 흰 빛살들이 엉키고 분산한다. 하얀 점들이 뒤섞이며 구름 안개나 연기처럼 일었다 사라진다. 위에서 아래로 내리꽂고 거꾸로 다시 끌어올리고, 들이친다. 좌우에서 빛이 쏟아지면서 가는 선들의 이미지가 흐르고, 대칭형으로 마무리된다. 1925년 을축년 대홍수를 겪은 후 건설한 배수펌프장과 일제강점기를 겪은 한국 근대사를 배경 삼아 작업한 결과이다.

작품 후반부에 깔린 연주 음악은 잔무늬 빛살의 움직임을 따라 빠르고 느리게 격정과 서정이 반복한다. 다이나믹한 소리와 빠른 템포는 북과 가야금연주를 중심으로 신비감을 준다. 음악의 제목은 따로 없다. 이 작품에 맞춤으로 장쾌하게 창작한 국악팀은 월드 뮤직그룹 ‘공명’이다. 20분가량을 다 관람하고 나니, 멍해졌다. 이번 신작 <다시 태어나는 빛, 양천(Reborn Light, Yangcheon)>은 구상에서 추상으로 마치 대규모 오케스트라의 장엄한 연주 같았다. 더불어 화면의 작은 움직임들의 디테일은 숨은 그림처럼 읽는 흥미를 더해주었다.

작품 관람이 끝날 무렵, 전시기획자 정수미 학예연구사가 거든다. “이이남 작가의 장점인가 봐요. 관람자들이 너무 좋아하고 재밌어하고 신기해해요.” 이어 신작 영상 <다시 태어나는 빛, 양천(Reborn Light, Yangcheon)>은 세 번이나 내용을 수정 교체했다고 한다. 최종 결과를 보니, 개막식 때 스쳐 등장했던 엄숙하고 장중한 범종 소리와 기와지붕, 백남준의 비디오 영상, 마곡문화관이나 양천 8경의 이미지가 완연히 제거되어 있다. 개막날 영상의 뒷부분을 정제한 것이다. 전반부 양천 8경의 구상 그림과 후반부 격동기 역사를 추상 이미지로, 명확히 대비시켜 놓았다. 

최근 이이남은 빛의 움직이는 이미지에 꽂힌 듯하다. 이번 마곡문화관 전시 바로 직전 광주 은암미술관(2019. 11. 4~12. 3.)에서 선보인 <다시 태어나는 빛(Reborn Light, beam projector 7대, 11분 6초)>이 그 사례이다. 물소리 새소리로 시작한 이 작품은 사람들 군상, 문자들, 나비, 구름, 파도 등 구상 이미지들이 뒤섞이며 국악기 연주와 어울렸는데, 이번 <다시 태어나는 빛, 양천(Reborn Light, Yangcheon)>은 구상에서 갈라 후반부를 완연한 추상적 동영상으로 마무리하였다. 앞으로 빛과 추상무늬의 전개를 통해 현실에 존재하지 않은, 원본 없는 미증유 이미지에 대한 이이남의 창작 의지를 감지케 한다.

  

3. 

 이번 개인전의 중심작품 <다시 태어나는 빛, 양천(Reborn Light, Yangcheon)>은 겸재 정선이 18세기 중엽에 그린 양천지역의 옛 풍경과 20세기 전반 마곡문화관의 전신 배수펌프장이 겪은 우리 근대사를 연계한 영상물이다.

이 신작과 함께 전시공간에 설치된 5점 구작이 눈길을 끈다. 특히 과거 양천 마곡지역과 관련하여 양천현령을 지낸 겸재 정선에 대한 오마주를 담은, 이이남의 구상계열 대표작들이라 할 수 있겠다. 전시실 구조에 맞춘 다섯 작품의 배치와 구성은 완벽했다. 이이남은 전시를 제안받고 전시공간에 처음 들어서자마자, 순간 작품의 배치구상을 완성하였다고 한다. 전시기획자와 전시장소, 그리고 작가와 만남이 최고의 연출과 예술성을 콜라보했다.

전시실 출입문을 들어서면 정면으로, 2017년 작 <박연폭포>(75인치 LED TV 4개, 6분 39초)를 만난다. 북벽 지붕에서 바닥까지 길게 폭포가 시원스레 쏟아지게 설치했다. 본디 겸재 정선은 폭포의 실경을 보이는 대로 묘사하기보다 우렁차게 쏟아지는 폭포의 굉음을 담기 위해 상하로 긴 화폭을 선택했을 터이다. 눈에 보이는 풍경 묘사보다 폭포 길이를 두 배가량 변형해, 소리의 리얼리티를 실감나게 표현한 점이 그렇다. 이이남은 4대의 TV를 세워 연결하고, 원화의 중간 부분을 반복해 폭포 소리를 동영상으로 더욱 강조했다. 배경에 저녁노을을 드리우기도 했다. 작품의 위치가 정북으로 개성 송악산과 박연폭포 쪽을 향한 점도 남다르다.

전시장 입구 오른편, 아래위 층이 오픈된 전시실은 옛 배수처리 시설 관리 공간이었다. 1층 <겸재 정선 고흐를 만나다>(55인치 LED TV 3개, 6분 20초)는 2014년 작이다. 18세기 중엽 겸재 정선이 19세기 말 유럽의 반고흐를 만나러 가는 대장정이 3대의 티브이에 담겨 있다. 오른쪽부터 겸재 정선의 <설평기려(雪坪騎驢)> 그림, 남프랑스 아를의 누런 가을 평원, 오베르 시절 반 고흐의 마지막 방과 붕대를 감은 자화상 화면이 배치되어 있다.

<설평기려(雪坪騎驢)>는 ≪경교명승첩≫(간송미술관 소장)에 포함된 그림으로, 마곡문화관과 인연이 각별하다. 발산과 우장산을 배경으로 삼은 흰 눈밭이 바로 마곡 들판이다. 화면 오른쪽 아래 눈길에 나귀를 탄 인물은 조선 문인화가 겸재 정선에 해당한다. 이같이 조선과 유럽 회화, 동서문화의 만남을 설정한 이이남의 작품으로는 2008년의 <모네와 소치와의 대화>(2-charnel video, 11분 3초), 2009년의 <겸재 정선과 세잔>(LED TV. 1대, 4분 20초) 등이 떠오른다.

2층에는 이이남의 대표작 2009년의 <인왕제색도-사계>(55인치 LED TV 1개, 4분 35초)를 중앙에 배치하고, 오른쪽 남쪽 벽에 두 작품을 설치해 놓았다. 두 영상물은 2010년의 <그곳에 가고 싶다>(beam projector 1개, 7분 23초)와 2017년의 <신 단발령망금강>(beam projector 1개, 6분)이다. <인왕제색도-사계>와 <그곳에 가고 싶다>는 겸재 정선이 75세 때 그린 1751년의 <인왕제색도>(삼성미술관 리움 소장)를 바탕 그림으로 디지털화한 작품이다. 수묵화 <인왕제색도>는 한국미술사의 최고로 손꼽히는 걸작이다.

 2009년의 <인왕제색도-사계>는 이이남식 디지털 구성과 변환의 전형으로 꼽히는, 대표작이다. 화면에는 매화와 진달래의 봄이 깔리고, 소나무 솔잎에 짙푸른 녹음이 들며 여름 폭포가 바위 계곡을 타고 내린다. 여객기 한 대가 인왕산 주봉 뒤로 숨을 때, 파란 하늘에 흰 구름이 장맛비를 쏟아낸다. 이어 비가 그치고 가을 단풍에 물든 저녁노을이 진다. 아름다운 석양에 인왕산 기슭 기와집에 불이 켜진다. 겸재 정선이 살던 집이다. 저녁연기가 피어오르며 눈이 내린다. 겨울 인왕산 능선 오른쪽 멀리 도시가 잠시 등장하고, 눈이 계속 쌓이다가 수묵화로 환원된다. 수묵화인 원화와 대조적으로, 사계의 변화와 노을 표현에 키치의 분위기가 물씬한, 인상적인 작품이다.

2010년의 <그곳에 가고 싶다>는 앞의 <인왕제색도-사계>와 달리 겸재 정선의 <인왕제색도>를 새롭게 해석해 변형한 영상이다. 한양도성의 서쪽, 둥글고 당차게 잘생긴 인왕산을 이상향으로 설정하였다. 그곳에는 마네, 쇠라, 뒤샹, 르네 마그리트 등의 유럽 작가의 작품 이미지와 도포 차림의 조선 선비, 소나무, 버드나무, 해오라기, 한국의 현대 유명인 등이 총망라되어 있다.

2017년의 <신 단발령망금강>은 더욱 다채롭다. 같은 제목으로 2009년의 <신 단발령망금강>(LED TV, 1대, 5분 30초)를 보완해 개작했다. 겸재 정선의 <단발령망금강> 원작은 국립중앙박물관 소장품에서 좀 더 가벼운 필치의 간송미술관 소장품으로 바뀌었고, 런닝타임을 30초 늘렸다.

금강산과 단발령이 벌어진다. 그 사이로 구름이 끼고 노을이 지며, 케이블카가 움직인다. 서울 풍경에 대규모 도시공사가 벌어진다. 멀리 비행기가 날아들고, 공사판에는 서울과 세계도시의 유명빌딩이 공존해 있다. 피사 사탑, 파리 에펠탑, 시드니 오페라하우스, 미국의 백악관, 상해 포동의 건물들이 보인다. 분단의 상징으로 6.25 전쟁 기념과 관련한 워싱턴의 조형물과 인천의 맥아더 동상도 등장한다. 맥아더는 단발령을 바라보고, 이순신 동상이 왼쪽 아래서 출현하고, 에펠탑 뒤 로댕의 유명 조각작품 <생각하는 사람>도 등장한다. 단발령에서 금강산으로 들어간 케이블카는 야경에 빠른 속도로 되돌아오며, 거대도시는 아스라이 사라진다. 단발령 고갯길에는 사람들이 불 밝히고 올라갔다가 사라지고, 케이블카에서 내린 사람들은 금강산 대신 거대도시를 바라볼 때, 다시 구름이 깔리면서 끝난다.

  

4.

이처럼 이이남은 동양과 서양. 고대와 현대를 넘나들며 분방하게 아이디어를 분출해왔다. 익숙한 이미지를 다르게 보게 하고, 새롭게 흥미를 유발케 하는 재능이 출중한 것 같다. 앞으로도 콘텐츠가 다양해지고, 예술적 깊이와 더불어 재미도 함께 넘칠 법하다. 지금까지 세상, 현실, 역사, 환경 등의 문제, 종교, 인간에 대한 성찰과 고뇌를 적절히 버무려왔기 때문이다.

이이남의 작업에는 미디어아트, 디지털 민중미술, 디지털 팝아트, 포스트 모더니즘 등 여러 사조와 경향이 혼재해 있다. 또 「미디어 아트의 시뮬라크르에 대한 메타포리즘 해석학」이라는 자기 작품에 관해 서술한 박사학위 논문의 제목이 말해주듯이, ‘실제와 가상’(simulacre)을 넘나들며 ‘은유’(matapho)를 끌어내려 한다. 이 주제는 그리스 철학에서 기원을 찾고, 복제기술 시대에 걸맞아 주목을 받았다. 이이남은 20세기 후반 비디오아트 창시자로 꼽히는 백남준을 잇는 작가로, 미디어아트의 선도로 평가된다.

이이남은 “명작에 기운생동한 숨결을 불어넣어 관객에게 기대와 흥미를 자극하고 싶다”라고 얘기해왔다. 내가 이이남을 반기며 이 글을 쓰는 이유는 무엇보다 겸재 정선의 대표작을 즐겨 활용해 작업해온 점에 있다. <금강전도>, <인왕제색도>, <박연폭도> 삼대 걸작을 비롯해, ≪경교명승첩≫의 <장안연월>과 <설평기려>, <단발령망금강전도> 그리고 이번 신작의 ≪양천 8경첩≫까지 망라되었다. 디지털 시대 문화 현상의 하나인 토종이 미래 문화의 씨이자 전통이 미래라는 뉴트로(newtro) 취향과도 잘 부합한다. 20세기 한국문화예술사에서 정체성에 대한 고민과 밀접하게 관련한 대목이기도 하다. 

 겸재 정선(謙齋 鄭敾, 1676~1759)은 조선 후기 진경산수화로 한국미술사를 대표하는 거장이다. 현실보다 더 나은 신선경(神仙景)을 꿈꾸며, 금강산과 한양을 중심으로 자신이 살던 조선 강산을 대상으로 진경산수화법을 완성했다. 겸재 정선이 이룬 진경산수화(眞景山水畵)의 형식미는 실경 사생보다 현장에서 받은 감명에 따라 변형해 그린 데 있다. 실경 현장의 기억과 직관으로 합성하거나 과장해 담은 것이다. 겸재 정선의 진경산수 작품은 보이는 대상의 사실적인 ‘눈’ 그림이라기보다 대상의 느낌을 강조한 ‘마음’ 그림, 곧 심화(心畫)라 일컬을 만하다. 

이이남의 이미지 변환 방식은 놀랍게도 겸재 정선의 다시점(多視點) 합성이나 변형화법과 상통한다. <금강전도> 같은 여러 시점의 봉우리를 한 화면에 합성하는 방식은 몽타주(montage)에 해당하고, <박연폭도> 처럼 폭포의 천둥소리를 담기 위해 화면을 길게 변형한 화법은 모핑(morphing)과 흡사하다. 그래서 나는 진경산수화를 강의할 때마다 겸재 정선이 지금 다시 태어나 활동한다면, 아마 이 시대 최고의 디지털 작가가 되리라고 말한다. 또 한국이 세계 반도체나 스마트폰 시장, IT 강국으로 성장하고, 디지털 문화가 발달한 것은 바로 겸재 정선의 DNA 계승과 무관하지 않다고 강조하기도 한다. 

겸재 정선의 생각을 이은 이이남이 출현하고, 세계미술계의 K-아티스트로 주목받는 것도 어쩌면 예정됐던 수순 아닌가 싶다. 또 동서고현(東西古現)을 망라해 디지털로 혼성한 이이남의 기량은 서양문화예술을 중심으로 교육되고 가치관이 정착된, 그러면서도 전통형식의 재창조를 끊임없이 추구해온 한국 근현대사회와 문화의 처지를 적절히 웅변하기도 한다. 케이팝이나 극영화 한류의 성향도 유사한 편이다. 

문화지형의 빠른 변화와 함께 지역 간, 세대 간, 사람 사이의 의식과 미감의 차이도 금세 벌어졌다. 나는 조선 시대 회화가 주된 전공인 데다, 스마트폰도 사용하지 않고 새로운 변화 환경에도 적응하지 못한 편이다. 인류가 신석기 시대로 되돌아가면 어떨까 꿈꿔도 본다. 어쨌든 동시대 미술을 대할 때 어색하고 취향도 크게 다르지만, 다행히 이이남의 작업에 겸재 정선의 명작들이 활용되어 있기에 나도 이처럼 디지털 아트(Digital Art) 내지 미디어 아트(Media Art)에 대해 눈을 돌려보게 되었다.

 나는 벌써 2011년 EBS 방송에서 ‘이야기 한국미술사’ 20강을 진행하며, 이이남 작품을 선정했다. 부제로 구석기 시대 ‘주먹도끼부터 디지털 아트까지’라고 달았고, 마지막 강의 “현대 문명과 사회, 그리고 미술”에서 이이남 작품으로 마감했다. 민주화운동과 민중미술의 후세대이자 현대 문명과 자연환경, 생태문제 등을 포괄하며 작업해온 결과, 이이남이 ‘지금’을 함께하는 미디어 아티스트이자 우리 시대를 드러낸 작가라 판단되었기 때문이다. 이를 다시 정리해 2019년 2월 같은 이름의 책으로 출간하였다. 이 책에서 나는 이이남의 작품 경향을 아래와 같이 썼다.

 이이남은 2000년대 중반부터 고전 회화나 세계 명화를 이용해 텔레비전 매체에 이른바 ‘움직이는 미술(Moving Art)’ 작품을 제작했다. 2009년도 작품 <신-금강전도>는 겸재 정선의 <금강전도>가 봄·여름·가을·겨울로 변화하는 모습을 담은 영상 작업이다. 처음에는 새 소리가 들리는 평화로운 봄 풍경으로 시작하지만, 이내 계절이 바뀌면서 금강산 곳곳에 고층건물들이 들어선다. 겨울이 되면 조용하고 아름다운 금강산이 온통 개발의 그림자로 뒤덮이게 된다. 헬기와 비행기가 지나가고 미사일이 날아다니는 화면과 함께 공사장 소음 같은 사운드가 메아리친다. 문명의 폭력으로 금강산을 망쳐 놓은 인간의 오류를 간파했다. 이후 이이남은 옛 그림과 현실, 동서양의 교류 등을 통해 현실을 비판하던 주제에서 생태문제로 관심사를 옮겼다. 잃어버린 자연환경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우려는 시도였다. 이이남은 현재 국내는 물론 해외에서도 왕성하게 작업 활동을 이어나가며 인기작가로 부상했다.

  

이이남을 처음 만난 지 벌써 30년이 흘렀다. 1990년 일 학기, 내 한국미술사 강의 수강생으로, 이름이 독특해 기억에 남은 조선대학교 조소과 학생이었다. 나는 1980년대 말 대학 민주화를 이룬, 조선대학교 미대 학생회의 요청에 따라 출강했다. 마침 1990년은 광주민중항쟁 10주년이 되는 해였다. 그때 내가 재직했던 전남대학교는 물론이고 조선대학교 한국미술사 수강생들에게 미술과 학생들이 모두 참여하는 항쟁기념전을 준비해야 하지 않겠냐며 독려했고, 양 대학 교정에서 멋진 전시가 꾸며졌다.

그리고 나는 2003년 1학기부터 광주를 떠나 명지대학교 미술사학과로 옮겼다. 2008년 겨울쯤 ‘겸재와 세잔’ 강의를 들었던, 박사과정 전시기획자들과 함께 ‘유명해진’ 이이남이 내 연구실을 방문한 적이 있다. 이때 겸재 정선의 <장안연월(長安烟月)> 수묵화와 폴 세잔의 <생뜨 빅뚜와르산> 유화를 선택한, 이이남의 디지털 작품 <겸재 정선과 세잔>(2009년, LED TV, 1대, 4분 20초)이 탄생했다. <장안연월> 수묵화에 비가 쏟아지며 <생뜨 빅뚜와르산> 유채화로 변하다가 눈이 내리자 원래 수묵화로 되돌아가는 화면의 변화를 보면서, 디지털 작업에 대한 몇 가지 아이디어가 불쑥 내게 떠올랐었다. 10여 년을 묵혔다가, 이번 기회에 나는 공동 작품과 2인전을 제안하였다. 이이남이 이를 흔쾌히 받아들여, 올해 말쯤 성사될 듯싶다.

마곡문화관을 인연으로 이이남을 다시 만나고 살펴보니, 그동안 활동이 세계적인 대가 반열에 올랐다 해도 지나치지 않을 정도이다. 중국과 아시아를 넘어 미국과 유럽의 미술관이나 갤러리에서 초청하는 기획전과 개인전을 가지며 인정을 받았다. 2016년 벨기에에서 우리 시대 비디오아트의 거장이자 전설로 추앙받는, 빌 비올라와 가진 2인전은 이이남 예술사의 정점일 법하다.

이렇게 명망도 얻고 세계에 자랑할 작가가 되었는데, “왜 서울에서 작업하지 않느냐”라고 이이남에게 물었다. 또 “뉴욕에 가서 작업하며 활동할 생각은 없는지”도 재차 물었다. 단박에 고개를 저으며, 고향 광주와 담양이 편하고 좋단다. 작업과 활동에도 별 불편함을 못 느낀다고 답한다. 요즘 말대로 글로벌-로컬리즘, 곧 그로컬리즘(grocalism)을 실천하는 작가의 면모도 커 보였다. 광주 양림동에 새로 완성한, 멋진 작업공간을 둘러보며 그랬다.

 

 

이태호 (명지대학교 미술사학과 초빙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