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주석의 사진살롱 34 – 용어 ‘보도사진’의 유래와 의미
04/09/2020
/ 박주석

1968년-보도사진연감-표지,-한국기자협회

이 장면은 1968년 <한국기자협회>가 발간한 『’68 보도사진연감』의 표지로 실린 사진기자들의 열띤 취재 모습입니다. 각자 비장하고 있는 카메라를 들고 무엇인가를 찍고 있습니다. 물론 연출이겠지만 말입니다. 500mm는 족히 되어 보이는 망원렌즈를 들고 있는 기자도 보이고, 화면 가운데에 취재용으로 나온 4X5인치 필름용 ‘Graflex Speed Graphic’을 들고 있는 기자도 보입니다. 대부분은 35mm 필름용 카메라를 들고 있습니다. 이 책은 지금도 <한국사진기자협회>가 매년 발행하는 『보도사진연감』의 첫 호입니다. 1968년부터 발행을 시작한 이 연감(年鑑)은 벌써 52년 동안 매년 발행하고 있습니다. 

<한국기자협회> 하부 조직이었던 <한국신문사진기자단>의 주관으로 첫 호를 발행한 이 연감은 매년 신문사와 통신사 사진기자들이 찍어 신문에 실린 사진 중 중요한 사건을 다루었거나 영상미가 우수한 사진들을 골라 월별로 편집하고, 한 권의 사진집으로 묶어 발행합니다. 지금도 같은 방식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차이가 있다면 첫 호가 185쪽 두께에 정가 1,000원짜리였다면, 가장 최근의 2019년 연감은 거의 400쪽에 달하는 두 권의 세트로 가격이 각 198,000원으로 올랐다는 정도일 것입니다. 그만큼 사진의 생산량과 매체에 실리는 사진의 양이 많아졌고, 사진기자들의 숫자도 많아졌기 때문일 것입니다.

여기서 이해할 수 없는 사실이 있습니다. 처음 『보도사진연감(報道寫眞年鑑)』의 발행을 주관한 단체는 <한국신문사진기자단>인데, 연감의 이름을 ‘신문사진연감’이라고 하지 않고 ‘보도사진연감’이라고 칭했다는 사실입니다. 68년 연감에는 사진기자단에 속한 매체와 기자 명단이 있습니다. 중앙지, 전문지, 지방지를 포함해 15개의 신문사와 5개 통신사 소속의 사진기자 101명입니다. 당시 통신사 기자들의 사진도 모두 일간지가 받아서 썼던 시절이니 사실살 신문사진연감이라고 해야 맞습니다. 헌데 ‘보도사진’이라고 칭했습니다. 지금도 그대로입니다.

그래서 ‘보도사진(報道寫眞)’이란 용어가 어디서 나왔는지를 찾아보았습니다. 이 용어가 처음 등장한 것은 1934년 일본에서 열린 ‘보도사진전람회(報道寫眞展覽會)’라는 전시의 명칭에서였다고 합니다. 이 전시는 당시 독일 유학을 마치고 돌아온 젊은 사진가 나도리 요노스케(名取洋之助 1910~1962)와 당시 일본의 중견 사진가로 유명했던 기무라 이헤이(木村伊兵衛, 1901~1974)의 공동 사진전이었습니다. 주로 당시 독일의 그래픽저널리즘 잡지에서 유행하던 르포르타주(reportage)사진의 주제 의식과 스타일을 따른 사진들이었습니다. 

1977년 일본 도쿄의 출판사 다위도(ダウィッド)에서 발행한 기시데스오(岸哲男)의 책 『사진저널리스트(寫眞ジャ-ナリスム)』에서 밝힌 사실입니다. 그는 보도사진이라는 명칭이 “그때(1934년 전람회 당시) 나도리 요노스케는 자신이 항상 말해 왔던 레포트(리포트) 포토라는 용어를 어떻게 번역하면 정확한 의미를 담을 수 있을지 伊奈信男(이나 노부오, 1898~1978))에게 의논하게 됐다. 일본에서는 이 무렵 프롤레타리아 문학운동에서 르포르타주 문학을 높이 제창하고 보고문학 또는 보도문학이라고 부르고 있었다. 이나 노부오는 이를 원용해 보도사진이라고 번역했던 것이다”라고 설명합니다. 

실제 이나 노부오는 두 사람의 ‘보도사진전람회’ 팸플릿에 서문 형식으로 「보도사진에 관해서」라는 글을 썼습니다. 그 내용을 소개합니다. 보도사진이란 “첫째, 報道의 報는 알린다(報知) 그리고 道는 언어로써 이끈다는 뜻으로 보도함과 동시에 지도하지 않으면 안 된다. 둘째, 사진은 훨씬 더 대중에게 이해되기 쉽고 또 국제성이 있다. 그러므로 의도적으로 사용할 때는 정치적・경제적・당파적 선전의 가장 강력한 무기가 되고 대외 선전과 관광객 유치를 위한 절호의 수단이 되기도 한다. 인쇄로 대량복제한 사진의 힘은 이데올로기 형성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친다. 셋째, 단순한 뉴스사진이 아니고 어떤 의도를 가지고 만든 엮음사진(組寫眞)의 경우에는 명확하게 사상의 전모를 표현해서 보도를 얻을 수 있다. 넷째, 보도사진가는 예민하고 저널리스틱한 센스를 가져야 하며 또 기술적으로도 모든 표현수단을 구사할 수 있는 능력을 가져야 한다. 어떤 경우에는 트릭과 같은 기법을 사용해야 할 때도 있다”고 합니다. 참고할 만합니다. 

문제는 이 글의 두 번째 정의 중에서 “인쇄매체에 이용된 사진은 정치적・경제적・당파적 선전의 강력한 무기로, 또 이데올로기 형성에 절대적인 힘을 발휘할 수 있고 대외선전의 도구로 활용할 수 있다”라고 말한 부분입니다. 당시 일본은 우리 민족의 숱한 희생을 강요했던 중일전쟁과 태평양전쟁을 향해 가면서 제국주의와 국가주의를 강화하던 시기였습니다. 독일에서 나치(Nazi)의 파시즘이 강화되던 시기 국민을 총 동원하는 ‘프로파간다 어용 르포르타주사진’을 배운 나도리 요노스케는 귀국 후 같은 정치외교의 노선을 걷던 일본군국주의에 사진이 봉사하는 길을 모색했습니다. 그런 사진으로 전시회를 열었고, 그 명칭을 보도사진이라고 했습니다. 이 용어를 제안한 사진가 ‘이나 노부오’가 당시 일제 외무성의 <문화사업부>에서 근무하고 있었던 점을 감안하면, ‘르포르타주 사진’을 ‘보도사진’으로 번역하면서 사진의 프로파간다적인 성격을 그 바탕으로 삼았다는 사실은 자명합니다. 

혹자는 ‘보도’라는 말이 Report의 번역어이니 ‘보도사진’은 ‘Photographic Report’의 번역이고, 그래서 우리가 일본의 근대 번역어인 ‘경제‘, ’문화‘ 같은 단어를 중립적으로 생각하고 자연스럽게 사용하듯이, ’보도사진‘이라는 말도 중립적이고 자연스러운 말이니 복잡하게 볼 필요가 없다고 합니다. 하지만 앞서 살폈듯이 ’보도‘와 ’사진‘의 결합인 ’보도사진‘은 그 의미가 간단하지 않습니다. 검토와 논쟁이 필요한 사안입니다.

박주석 (명지대학교 한국이미지언어연구소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