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호의 답사 스케치11 – 다섯 번째 금강산 탐승, 해금강 일출
04/01/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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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산을 다시 찾아 해금강 일출을 그리고

나는 작년 2019년 2월 설날 연휴 끝에 금강산에 갈 기회가 생겼다. 2월 12일~13일 ‘남북선언 이행을 위한 2019년 새해맞이 연대 모임’ 금강산 행사에 참여했다. 일박이일 짧은 여정이었지만, 다섯 번째 여정이다.

흰 바위산의 아름다운 수정봉과 멀리 노을에 물든 채하봉(彩霞峰) 등 온정리 호텔 주변은 여전하였다. 도착하자마자 스케치북 양면에 펼쳐 담았다. (도 1, 2) 다음날 오전에 찾은 집선봉 설경과 솔밭 아래 복원된 신계사도 마찬가지였다. (도 3) 그런데 이전의 답사 때는 엄두도 못했던 해금강 일출을 보았다. 날씨마저 청명해 장관이었다. ‘남북선언 이행을 위한 2019년 새해맞이 연대 모임’ 금강산 행사의 절정이었다. 그동안 늘 감동해오던 동해의 일출과 다름이 없었다. 암벽에 걸쳐 떠오르는 태양을 연속 찍었다. (도 4, 5)

이 행사를 다녀오며, 금강산을 다시 와 그릴 수 있다는 기대감이 컸다. 일 년을 기다렸으나, 지난해 2월 말 베트남 북미회담이 깨진 이후 금강산 가기가 짙은 안개에 가려 있는 듯하다. 그래서 해금강문(海金剛門) 일출을 사생했던 스케치북을 다시 꺼냈다. 남으로 고성 쪽을 향해 설경 산세와 더불어 담은 아침 바다 그림도 있었다. 이들 일출 그림은 채색하지 않은 채 두었다. 스케치를 펼쳐 놓고 한해 전의 붉은 태양과 물빛을 넣자니, 그때 감흥이 일지 않기에 더 손대지 않고 그대로 선보인다. (도 6, 7)

 

화원 김하종의 <옹천> 일출 그림

조선 후기 진경산수화의 큰 줄기를 이루는 금강산과 관동8경을 담은 작품에 동해의 일출이 곧잘 그려졌다. 겸재나 단원의 양양 낙산사, 망양정, 문암 등에서 본 일출 장면 그림이 떠오른다. 동해의 일출 분위기를 적절히 담은 작가와 작품으로는, 유당 김하종(蕤堂 金夏鍾;1793-?)의 <옹천> 일출 그림이 떠오른다.

푸르스름한 바탕색에다 붉은 담채를 살짝 가미해 맑게 열리는 여명의 분위기를 깔고, 수평선 위 떠오른 붉은 태양을 강조한 점이 돋보이는 가작이다. (도 8) 통천 옹천의 어두운 바위 언덕에 자란 소나무들과 벼랑 아래 파도치는 모습의 붓 맛과 담채가 가볍다. 암벽 길목에서 두 문인이 떠오르는 해를 감상하는 모습도 실감 난다. 왼편에 치우쳐 옹천을 배치한 구성은 겸재나 단원 등 선배 화가를 고스란히 답습한 화면을 보여준다. 금강산화첩 《풍악권(楓岳卷)》(개인 소장)에 포함된 한점이다.

이 화첩은 1991년 소더비 경매에 등장했다가 국내로 반입되어, 1999년 내가 객원 큐레이터로 참여했던 일민미술관 ‘몽유금강’ 전시를 통해 처음 공개되었다. 《풍악권(楓岳卷)》은 조선 말기 개화파 외교관으로 이름난 귤산 이유원(橘山 李裕元;1814-1888)이 1865년에 금강산을 유람한 후 기행문 「풍악유기(楓岳遊記)」와 묶은 서화첩이다.

이유원은 고종 즉위년(1864) 좌의정에 재직하다가, 흥선대원군과 대립하는 바람에 수원유수로 좌천된 직후 1865년에 금강산 여행을 떠났다. 만년에 정치적으로 울적하면서도, 한편 홀가분한 마음으로 8월 18일(음력) 집을 나서 9월 6일 서울로 돌아왔다. 이유원 자신이 기행문에서 밝혔듯이 ‘산은 깨끗함을 생각케 하며, 물은 움직임을 생각케 하며, 돌은 곧음을 생각케 한다’는 선비의 풍류정신을 펼친 것이다. 이유원의 여정에 김하종이 동행했는지는 알 수 없으나 ‘김하종이 자신을 위해 금강산 명승도를 제작해 주었다’고 서문에서 밝혀 놓았다.

다섯 권의《풍악권》은 「풍악유기」를 비롯한 이유원의 기행시문이 한 권이고, <헐성루도(歇惺樓圖)> <명연도(鳴淵圖)> <묘길상도(妙吉祥圖)> <만물초도(萬物草圖)> 등 58점의 명승도와 그 명승을 설명하는 기행시문이 나머지 4권으로 꾸며져 있다. 이같이 금강산 소재의 문학과 서화가 조화롭게 만나는 이유원과 김하종의 《풍악권(楓岳卷)》 서화첩을 통해 19세기 진경산수화의 격조가 유지되었다.

 

네 번의 금강산 여정을 다시 들춰 보며

다섯 번째 금강산 답사인 해금강 일출을 다녀와 뒤돌아보니, 금강산을 처음 밟은 지 벌써 이십 년이 훌쩍 흘렀다. 나는 전남대학교 재직 시절 뱃길이 열리기 두 달 전, 1998년 8월 말~9월 초 학고재 화랑의 후원으로 제주의 강요배 화백과 북경과 평양을 거쳐 처음 금강산을 다녀왔다. 내 인생의 첫 해외여행이었고, 북한지역을 밟았으니 10일간 일정이 온통 흥분으로 채워졌다.

평양에서 고구려 벽화고분, 고구려와 조선의 유적지, 박물관과 미술관 등을 살핀 뒤, 금강산 답사 첫날은 평양에서 새벽에 출발해 원산을 찍고 오후에 구룡폭을 다녀왔다. 다음 날은 온정령 고개를 넘어 내금강 장안사 울소 삼불암 백화암 표훈사 만폭동 금강대 대소향로봉 보덕암 진주담 분설담 사자암 묘길상 코스와 정양사 오르기, 만물상을 탐승하는 강행군이었고, 삼일째는 해금강과 삼일포를 돌아보았다. 정양사에 팍팍하게 오른 답사는 남쪽 미술인으로는 처음이었다.

여행한 직후 정리한 조선 시대 금강산 그림에 대한 글은 답사 때 찍은 사진과 더불어 학고재출판사가 발간한 금강산 책에 실었다. 별도의 답사기는 게재할 곳을 찾지 못하다가 반년이 지난 뒤 미술잡지에 다섯 번에 걸쳐 연재하였다.

 

두 번째는 1999년 1월 동해에서 배를 타고 금강산 설경을 2박 3일 살폈다. 외금강 만물상과 옥류동 구룡폭 코스의 설경을 감상했다. 이때 옥류동 다리 앞에서 넘어져 발목을 접지르는 바람에 3일째 해금강의 겨울 풍경을 보지 못했다. 배에 머물며 장전항에서 보이는 설경을 스케치했던 기억이 남아 있다. 아마도 그때 스케치가 지금 나에게 그림 그리는 일을 자극했는지도 모르겠다.

1999년 상반기에는 일민미술관과 동아일보가 마련한 ‘몽유금강-그림으로 보는 금강산 300년 전’(1999.7.7.~8.29)에 객원 큐레이터로 참여해 조선 시대와 근대미술사의 금강산 그림과 관련한 기획을 맡았다. 또 15명의 전시 참여 현대 작가들에게 금강산을 강의하고 안내하면서 4월의 봄 금강산을 만끽했다. 이 세 번째 탐방 역시 유람선을 탄 여정이었고, 만물상과 구룡폭 코스로 제한되었다. 새로운 금강산 그림과 자료들을 상당히 많은 양을 발굴하였고, 전시 도록에 ‘금강산의 문화와 예술 300년’을 정리해 실었다. 전시 기간에는 주요 출품작을 선정해 동아일보에 10회에 걸쳐 연재했다. 또 전시작품에서 소정 변관식의 명작 <옥류천도>에 대해 문제 제기가 있었고, 지상 논쟁이 벌어졌다.

 

세 번의 여행을 기반 삼아 ‘금강산·천년의 문화유산을 찾아서’라는 부제로 금강산에 관한 책을 냈다. 답사기 「금강산 미술기행-옛 화가들의 발자취를 따라」와 「금강산 불교유적, 그 천년의 역사 1, 2, 3」 세 꼭지에, 논문 「한국산수화의 모태, 금강산과 금강산 그림」을 합해 묶은 것이다.

이후 금강산 여행에 동행했던 강요배와 송필용 같은 작가의 금강산 그림 개인전 도록에 평론 글을 쓰기도 했다. 1999년과 2000년에 각각 마련한 두 작가를 통해 금강산 개방이 가져온 새 회화형식의 창출을 실감하게 했다. 강요배는 서구 인상주의 수용 이후 금강산 풍경을 통해 한국적 화풍을 창출했다고 여겨지며, 송필용은 조선 분청자의 박지문 기법을 활용해 설경을 중심으로 금강산을 재해석해냈다.

2003년 전남대학교에서 명지대학교 미술사학과 교수로 상경한 뒤, 2004년에는 국립현대미술관의 ‘그리운 금강산전’ 기획에 참여해 ‘근대 금강산 그림’과 관련한 논문을 전시 도록에 실으며 1999년 일민미술관 기획전 때의 글을 보완할 수 있었다. 또 고려시대 금강산의 불교를 발표할 기회가 주어져 불교와 관련한 금강산을 다시 정리하게 되었다. 역시 금강산의 불교는 고려문화의 터전이라 할만하며, 첫 답사기의 불교 유적에 대한 대목은 이 논문으로 대체했다.

 

2008년 6월에는 명지대학교박물관 답사 프로그램으로 여름 내금강과 외금강, 해금강을 다시 찾았다. 대학원 미술사학과 석박사과정 학생을 중심으로 30여 명이 참여했다. 네 번째 금강산 답사였다. 배로 다니던 여행에서 버스로 이동하는 관광이어서 경비도 시간도 크게 줄었고, 탐승 시간을 비교적 충분히 가질 수 있어 좋았다. 앞서 3번의 여정에서 가지 못했던 구룡폭 능선 넘어 구정봉에 오른 게 새 보람이었다. 정상에서 상팔담과 주변의 외금강 바위산 속살이 큰 감명으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그동안 슬라이드 필름으로 찍어 왔던 데서 벗어나, 처음 디지털카메라를 사용했다는 점도 내 답사 인생의 큰 변화였다. 덕분에 금강산 코스 따라 만나는 정경과 부분들을 일천 커트 남짓에 샅샅이 담아 왔다.

우리가 금강산 답사를 다녀온 2주 뒤 금강산이 닫혔다. 개방 10년이 채 못되어 다시 막힌 것이다. 간간이 글을 쓰거나 강연하는 일을 제외하곤 금강산을 잊고 지내다 10년이 또 지난 2017년 8월 명지대학교 대학원 미술사학과에서 ‘겸재와 단원의 발자취 따라’ 찾아 강원지역을 찾았다. 답사지 표지에 총석정을 그려 넣고, 표제로 ‘총석정을 못가는 관동8경 답사’라고 썼다.

 

같은 해 2017년 11월 강원일보, 서울대학교 통일평화연구원, 강원대학교 통일강원연구원 공동주최로 강원대학교 글로벌경영관에서 가진 『금강산 관광사업과 남북교류의 새로운 모색』이라는 ‘2017 평화 통일 국제학술 심포지엄’ 때, 나는 “그림으로 본 금강산”을 주제로 발표하였다. 금강산 예술에 대해 예전에 썼던 글을 다듬으면서, 조선시대 유람문화에서 20세기 이후 근대관광으로 변한 양상을 재검토할 기회였다.

종합토론 시간에는 지난 금강산 관광사업을 뒤돌아보며 과연 금강산이 열릴 것인가에 대한 논쟁이 벌어졌다. 워낙 핵 문제가 첨예하게 대립하던 때인지라, 심포지엄 자체에 대한 부정적인 견해도 없지 않았다. 심지어 가까운 시일에 금강산이 열리면 손가락을 뜨거운 장에 지지겠다는 주장도 제기되었을 정도였다.

 

2018년 들어서 급격하게 남북관계가 열리고, 정년 퇴임을 한 2년째여선지 한가해진 터에, 11월부터 다시 금강산 자료들을 들춰 보았다. 1998년부터 2008년까지 네 번에 걸쳐 찍은 슬라이드 필름과 디지털 사진을 정리하며 내금강 계곡 바위에 새긴 이름이나 시 글씨를 재검토했더니, 미술사나 문화사에서 익숙한 여러 문인이나 화가들이 여럿 확인되어 반가웠다. 그리고 사진들을 뒤지면서 자연히 지난 답사 여정의 감흥이 돋아 스케치에 몰두하기도 했다. 2017년 7월 ‘서울산수’ 책 출간과 서울 스케치 개인전에 이어 ‘금강산수’가 가능할 만큼, 2018년 11월과 12월 두어 달 동안 100여 점이나 그렸다. 이 스케치들은 당시 찍은 사진과 더불어 금강산의 유적과 명승 소개에 적절한 참고 도판으로 삼아도 될 성싶다.

 

이태호 (명지대학교 미술사학과 초빙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