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호의 답사 스케치10 – 정월 보름달 뜨고 지고, 서촌에서
02/18/2020
/ sketch

* 썸네일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보다 큰 이미지를 슬라이드로 보실 수 있습니다.

  세상 시끄럽지만, 올해도 어김없이 2월 8일 저녁에 경자년 쥐해 정월 대보름 달이 떴다. 다음날 새벽녘에 졌다. 나도 여느 때처럼 보름달 따라 서촌을 어슬렁거렸다. 작년 정월 대보름달은 청풍계 쪽에서 봤고, 추석 보름달은 인왕산 범바위에 올라 사진을 찍고 스케치했다. 올해는 갑자기 몰아친 한파 다음날인 데다가 미세먼지 뉴스에, 도봉산 망월사를 오랜만에 가려다 산 오르기는 포기했다.

  효자동 큰길 3층 까페에서 큰 유리창 너머로 북악산인 백악 월출을 담았다. 오른쪽 능선 부아암과 용눈이바위 사이로 둥근 원에 꽉 찬 만월로 떠오른 모습을 스케치했다. (도 1) 그림에 둥근 달을 크게 그리면서, 아기 업은 모습이라는 부아암(負兒岩)을 강조해 그렸다.
  겸재 정선은 이 남근 바위 형태를 유난히 과장해 표현하곤 하였다. 1740~50년대 <백악> 전경을 그릴 때나 장동8경의 <독락정>을 그릴 때 그러했고, <부아암>을 독립해 담기도 했다. (도 2, 3) 그만큼 부아암은 한양 도성의 강렬한 에너지 덩어리인 셈이다. 이게 남사스러웠는지 비둘기 바위라고 부르기도 한다.
  이처럼 과장해서 대상의 리얼리티를 강조하는, 풍경화의 사실감 표현을 정선에게 배웠다. 내 그림은 정선이 변형시킨 것에 비하면 훨씬 덜한 편이다. 역시 나는 대가의 풍모에 따라가지 못한 결과 아닐까.

  언제부터인지 보름날이나 이튼날 16일인 기망(旣望)에는 저녁 달뜨기 월출(月出)보다 새벽달 지는 월몰(月沒)의 처연한 광경이 맘에 다가와 자주 그렸다. 늙은 징조? 암튼 올해도 효자동 길 건물 옥상을 찾아 인왕산 남쪽 곡성으로 지는 새벽달을 그렸다. 화면의 왼쪽부터 얼굴바위, 모자바위 모암(帽岩), 범바위와 희게 드러난 도성으로 둥근 달이 넘어갔다. 찬바람에 못이겨 빠르게 이 광경을 스케치하며, 공간상 얼굴바위 앞에 둥근 달을 배치해 보았다. (도 4) 이곳 인왕산 남쪽 자락은 도성 안팍을 조망하는 최고의 전망대로, 조선 문인과 묵객들이 즐겨 찾던 장소이다. 오르내리며 해골바위 선바위 국사당 등을 만나게 되고, 인왕사를 비롯한 여러 사찰이 들어서 좋은 기도처가 많은 곳으로 꼽힌다.

  올해 겨울은 유난히 푸근해서 남쪽의 꽃소식도 일찍 들려온다. 늙은 노매(老梅) 가지에 몇 송이 벙그러진 청매 꽃을 그리고 보름달을 앵겨 보았다. (도 5) 광주에 살면서 자주 찾았던 담양 지실마을 매화를 떠올리며 그린 그림이다.

 

이태호 (명지대학교 미술사학과 초빙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