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주석의 사진살롱 31 – 코다크롬과 필름현상
01/30/2020
/ 박주석

Steve McCurry, Afghan Girl, at Nasir Bagh refugee camp near Peshawar, Pakistan, 1984.

이 사진은 아마 20세기 후반 이후 세계에서 제일 많은 사람들이 본 유명한 이미지 중 하나일 것입니다. <매그넘>의 회원이자 우리 시대 최고의 포토저널리스트로 명성이 자자한 스티브 맥커리(Steve McCurry)의 <아프칸 소녀>입니다. 『내셔널 지오그라피』의 표지 사진으로 실려 유명해졌습니다. 12살의 난민 소녀를 찍은 사진인데, 그간 고생이 얼마나 심했는지 우수에 찬 표정이 소녀 같지가 않습니다. 특히 소녀의 녹색 눈동자가 그런 비애를 더 느끼게 합니다. 동시에 선명하게 재현한 컬러사진의 힘을 깨닫도록 만듭니다.

이 사진 역시 한국을 처음 컬러로 기록한 정남용 선생의 경우처럼 컬러슬라이드 필름인 코다크롬(kodachrome)으로 찍었습니다. 소녀의 특이한 녹색 눈동자는 코다크롬 특유의 색 재현력에 힘입어 선명하면서도 멜랑콜릭한 분위기를 자아내 사진의 주목도를 높이는 역할을 합니다. 아마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눈동자가 아닐까 싶습니다. 그래서인지 코닥(Kodak)사는 2009년 코다크롬의 단종을 선언하고, 2010년 7월 생산을 중단할 때, 마지막으로 생산한 한 롤의 코다크롬 필름을 스티브 맥커리에게 헌정했습니다. 스티브는 이 필름을 갖고 30컷 정도의 완성한 사진을 찍었고, 이 사진들로 전시도 여러 차례 열었습니다. 평생의 거의 모든 사진작업을 코다크롬과 함께 해준 작가에 대한 고마움의 표시일 것입니다.

스티브가 사용했던 마지막 코다크롬은 36컷용이었고, 이 필름을 카메라에 장착하고 거의 1년에 걸쳐 전 세계를 다니며 필요한 사진을 찍었다고 합니다. 한 컷, 한 컷 신중하게 찍었겠지요. 뉴욕과 인도, 터키 등 자신이 주로 활동했던 나라들을 다녔고 필요한 사진을 찍었습니다. 뉴욕에서는 자신이 좋아하는 배우 ‘로버트 드 니로(Robert De Niro)’도 찍었고, ‘사이먼 앤 가펑클(Simon & Garfunkel)’의 폴 사이먼(Paul Simon)의 사진도 찍었습니다. 마지막 컷은 뉴욕에서 자신의 자화상을 찍었다고 합니다. 꽤 귀여운 데가 있습니다. 실제 만나 봐도 그렇습니다. 그리고 필름의 현상은 마지막까지 코다크롬 현상 시스템을 유지한 캔자스시티(Kansas City)의 현상소에서 했는데, 자신이 직접 가서 현상을 맡겼다고 합니다. 아주 근사한 장례식이었습니다. 

폴 사이먼(Paul Simon)을 찍은 이유는 그가 발표한 노래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폴의 인기곡 중에는 <Kodachrome>이란 제목의 노래가 있습니다. 1973년에 발표했고, 발매 당시 ‘빌보드차트’에서 1위를 기록한 대중적인 히트곡입니다. 노래 제목 자체가 ‘코다크롬’이니 스티브가 마지막 필름으로 꼭 찍어야만 했던 가수였습니다. 노래 가사 중 한 부분을 번역문과 같이 소개합니다. 

“Kodachrome / They give us those nice bright colors / They give us the greens of summers / Makes you think all the world’s a sunny day / I got a Nikon camera / I love to take a photograph / So mama don’t take my Kodachrome away”

“코다크롬 / 밝고 나이스한 색을 보여주네 / 여름의 푸름을 보여주네 / 온 세상이 화창한 것만 같아 / 나는 니콘 카메라를 갖고 있어 / 사진 찍기를 무척 좋아해 / 그러니 엄마, 내 코다크롬을 빼앗지 마세요.”

디지털 사진이 없던 아날로그 이미지 시대에, 코다크롬의 컬러가 보여준 세상의 아름다움을 찬미하고 있습니다. 그만큼 코다크롬의 색(color)과 톤(tone)의 재현력과 컬러발란스(color balance)가 뛰어 났습니다. 1935년도에 필름의 역사에서 처음 개발하고 발매한 컬러슬라이드 필름인데도 말입니다.

코다크롬은 많은 전문가들로부터 “사진 기술력의 예기치 못한 발전”의 결과라는 평을 받습니다. 기술이란 원래 단계적으로 점점 발전해가는 것이 정상인데, 코다크롬은 정말 예외적으로 사진 재현력의 최고 수준을 컬러의 시대가 도래하기 전에 성취했습니다. 코다크롬의 발매 다음 해인 1936년 독일의 아그파(Agfa)사가 아그파컬러-누(Agfacolor-Neu)라는 컬러슬라이드 필름을 내놓았고, 코닥 역시도 1942년에 코다컬러(Kodacolor)라는 컬러네거티브 필름을, 1946년에는 엑타크롬(Ektachrome)이란 이름의 또 다른 컬러슬라이드 필름을 출시했습니다. 참고로 코닥은 트랜스퍼런시(Transparency) 즉 컬러슬라이드 필름 이름에는 ‘—chrome’을, 네거티브 필름에는 ‘—color’를 붙였습니다. 그 이후 많은 일본 업체들도 줄줄이 컬러슬라이더, 컬러네거티브를 시장에 내놓았습니다. 하지만 2000년대 필름의 시대가 끝날 때까지 그 어떤 필름도 코다크롬의 품질과 명성을 따라잡지 못했습니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습니다.

필름에서 컬러를 표현하는 방식의 차이 때문입니다. 코다크롬은 색의 감법(減法) 원리를 바탕으로 한 최초의 컬러 필름입니다. 이전의 컬러사진은 가법(加法)의 원리로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획기적이었고, 그 이후 모든 컬러사진은 코다크롬과 같은 감법(減法) 원리로 만들고, 크로모제닉(Chromogenic) 현상 방식으로 상을 재현합니다. 은(Silver)의 감광성으로 형성한 이미지에 색 형성제(color former)인 염료(Dye) 즉 컬러커플러(Color Coupler)를 입혀 색을 만드는 방식입니다. 그런데 이 컬러커플러를 현상하는 과정 중 외부에서 공급하는 방식 즉 ‘외형발색방식’이 있고, 처음부터 필름이나 인화지의 유제 자체에 내장하는 방식 즉 ‘내형발색방식’이 있습니다. 코다크롬은 ‘K-14’로 불리는 외형발색의 현상방식을 사용했고, 그 외의 모든 컬러사진은 ‘E-6’라 불리는 내형발색의 방식을 썼습니다. 따라서 이미지의 재현력을 결정하는 원래 유제의 은 분포 밀도가 코다크롬이 다른 시스템에 비해 월등히 높을 수밖에 없었고, 당연히 화질이 뛰어날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다만 한 가지 문제는 현상의 과정이 그만큼 까다롭고 정교한 절차를 거쳐야 한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시설과 공정 또한 굉장히 복잡하기 때문에 비용 또한 많이 듭니다. 필름의 현상 비용도 비쌀 수밖에 없었겠지요. 따라서 코닥은 일정한 시장의 규모를 갖추지 않은 나라에는 코다크롬 전용 현상소를 세우지 않았습니다. 우리나라에 코다크롬이 크게 보급되지 않은 이유입니다. 현상 시설이 없으니 코다크롬으로 사진을 찍으면 필름 현상을 일본이나 미국 등 시설이 있는 곳에 보내야만 했습니다. 그래서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화질이나 색감은 떨어지지만 값이 싸고 국내에서 현상을 맡기기 쉬운 ‘엑타크롬’이나 ‘후지크롬’ 같은 내형발색 방식의 컬러슬라이드 필름을 주로 사용했습니다.

사족입니다만, 우리나라에서도 코다크롬 현상이 가능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바로 1988년 서울올림픽 때입니다. 올림픽 대회 취재를 위해 전 세계에서 수많은 사진가들과 사진기자들이 들어왔고, 이들이 주로 코다크롬을 사용했기 때문입니다. 영향력 있는 서방 언론인들에게 현상서비스를 제공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올림픽이 끝나고 얼마 있지 않다가 철수하고 말았습니다. 시장이 없어 수지타산이 맞지 않아서였다고 합니다. 솔직하게 말하면 당시 우리나라 사진기자들이나 독자들, 사진가들과 관객들의 안목이 외형발색 방식의 코다크롬과 내형발색 방식의 엑타크롬, 후지크롬 등의 화질 차이를 구별할 정도로 섬세하고 세련되지 못했었다는 사실의 방증입니다.

 

박주석 (명지대학교 한국이미지언어연구소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