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주석의 사진살롱 30 – 추억의 코다크롬(Kodachrome), 기억의 색깔
01/16/2020
/ 박주석

정남용, 광화문광장, 1945, Kodachrome film, 한국사진사연구소 인화, 1998, R-type 프린트

위 사진은 한국사진가가 본격적인 컬러로 우리나라의 모습을 기록한 최초의 장면입니다. 1945년 9월 해방 직후 미군의 일원으로 고국에 도착한 정남용(鄭南龍, 1916-1980년대) 선생이 광화문 일대에서 연합군의 진주를 환영하는 시민들의 모습을 찍은 사진입니다. 멀리 북악산의 모습이 보이고 그 앞으로는 일제의 조선총독부였고 훗날 대한민국의 중앙청과 국립중앙박물관으로 사용했던 건물이 보입니다. 자세히 보면 건물 테라스의 기둥 사이로 중앙에 태극기가 걸려있고, 왼쪽으로는 제2차 세계대전의 승전국인 미국, 영국의 국기가, 오른쪽으로는 자유중국(지금의 타이완)과 소련(U.S.S.R)의 국기가 걸려있습니다. 그리고 앞쪽 지금의 세종로 일대에는 태극기와 환영 플래카드를 들고 모여 서있는 서울 시민들이 보입니다. 

해방 직후 최초의 컬러사진을 남긴 정남용 선생은 하와이 이민 2세로 태어나 미국 국적을 갖고 있던 미국인이었습니다. 선생의 부친 정두옥은 1903년 일제의 탄압과 경제적 궁핍을 해결하기 위해 하와이(Hawaii) 사탕수수 농장으로 갔던 이민노동자였습니다. 처음에는 농장 일을 했고, 계약이 만료되자 세탁업과 양복점을 하며 돈을 모았고, 생활비를 제외한 모든 돈을 안창호, 이승만 선생 등이 주도한 미국 내 독립운동 단체인 ‘대한인국민회’에 기부하며 30여 년간 독립운동에 헌신한 인물이었습니다. 1912년 이곳에서 다른 미주지역의 한인과 사진교환을 통해 결혼을 했습니다. 사진만 보고 신부를 맞는다고 해서 ‘사진신부(寫眞新婦)’로 불렸습니다. 정남용 선생은 이 결혼을 통해 정두옥의 장남으로 출생했고, 어려서부터 한국어와 한국문화를 배우며 성장했습니다. 

선생은 사업가였던 부친의 후원 아래 1938년 하와이대학 농학부를 졸업했고, 모교인 하와이중학교에서 교사로 학생들을 가르치던 미국 엘리트였습니다. 교사로 봉직하던 중 1941년 일본의 진주만 폭격으로 태평양전쟁이 일어나자 곧바로 미군에 입대해 복무했습니다. 전쟁 후 선생은 당시 태평양함대 사령관이던 맥아더 장군에게 한국어를 할 수 있으니 한국으로 보내 달라고 부탁했고, 1945년 9월 승전국인 미 육군 대위의 신분으로 해방 조국에 돌아왔습니다. 미 군정청 소속 양잠을 관리하는 농무부(農務部)에 배치되었고, 서울에 체류했습니다. 당시 귀하던 카메라를 갖고 있던 선생은 해방 정국의 서울과 사람들의 모습 등 당시 모든 사회상을 컬러슬라이드필름으로 기록했습니다. 이 때 선생이 사용한 필름이 미국 코닥(KODAK)사가 팔던 ‘35mm 코다크롬’이었습니다.

1990년대 당시 시판하던 코다크롬 필름과 현상 후 마운트를 해 놓은 슬라이드필름

디지털 사회의 여파로 지금은 생산이 중지되었지만 코다크롬은 코닥에서 생산했던 대표적인 카메라 ‘컬러슬라이드필름’이었습니다. 정식 명칭은 ‘Color Transparency on Film’입니다. 1935년에 처음 개발돼서 2009년 6월 22일에 단종이 발표될 때가지 코다크롬은 코닥의 대표적인 상품이자, 전 세계에서 가장 사랑 받는 컬러필름 중 하나였습니다. 물론 이전에도 다양한 컬러사진 프로세스가 개발되고 팔리기도 했지만, 기술적 한계로 인해 우리의 시각적 경험과 유사한 컬러의 재현은 이루어지지 못했습니다. 이런 한계를 극복하고 본격적인 컬러사진의 시대를 열었던 발명품이 바로 코다크롬이었습니다. 그래서 발매되자마자 사진용으로 또 영화용으로 전 세계에서 크게 유행했습니다. 

하지만 일제 말기 우리나라에는 코다크롬이 보급되지 않았습니다. 1935년 발매되기 시작한 제품이지만 일제가 태평양전쟁의 적국인 미국의 모든 상품 수입을 금지하고 있던 상황이었습니다. 그래서 광복 이전의 한국을 찍은 모든 사진은 여전히 흑백이었습니다. 일본의 사진 산업체들이 아직은 컬러사진의 기술력을 확보하고 있지 못했고, 전쟁 총동원령으로 그나마 사진 관련 제품 자체를 시중에서 구할 수 없기 때문이었습니다. 컬러사진이 있었다고 하더라도 광화학적 사진프로세스로 만든 것이 아니고 흑백사진에 물감으로 채색하는 정도였습니다. 물론 『내셔널지오그래픽(National Geographic)』 같은 잡지의 사진가들이 찍은 1910~20년대 한국의 모습을 담은 컬러사진이 남아 있습니다만, 코닥크롬의 색감과 비교하면 어색하기 그지없습니다. 그래서 코다크롬 필름을 사용한 정남용 선생의 사진은 한국이 제대로 된 육색(六色) 즉 컬러로 기록된 첫 경우라고 할 수 있습니다. 

흑백으로 남는 기록이 있고, 컬러로 남는 기록이 있습니다. 광복 이전의 한국사회는 흑백으로 기억되고 있습니다. 해방 이후에야 간헐적으로 컬러로 기억되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리고 1980년대가 되어서야 한국사회는 온전히 컬러로 기억되기 시작했습니다. 출발은 정남용 선생이 코다크롬을 사용해 찍은 사진입니다.

 

박주석 (명지대학교 한국이미지언어연구소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