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카이브와 미술
01/08/2020
/ artachives1

기록은 어떤 물체에 문자 또는 기호로 사실을 적는 행위, 또는 적어둔 매체를 뜻한다. 이러한 기록물(records)은 인간의 삶(life cycle)과 같이 수없이 생성되고 또 소멸해 버린다. 이렇게 명멸하는 기록물 중에는 단 한번 사용으로 생명이 끝나는 것도 있고 필요와 가치에 따라 보존, 관리되는 기록도 있다. 그리고 이를 대상으로 조직적인 프로그램을 만들어 관리뿐만 아니라 생산, 수집, 평가, 분류배열, 목록기술, 참고봉사, 자동화업무, 이용, 전시홍보, 기록윤리, 기록관계법, 그리고 보존 등의 전반적인 원리와 운영기법을 연구하는 학문 또한 존재한다. 바로 ‘레코드와 아카이브 연구 분야’ 즉 ‘기록관리학’이다.

일반적으로 아카이브는 (1) 공공 기록물이나 역사상 중요한 문서들(historic documents)이 보존되어 있는 장소, (2) 그 때문에 보존된 역사에 관한 기록(historical records)이나 문서‘라고 정의한다. 기록학 용어사전에 아카이브(Archives)는 지속적 가치 때문에 단체나 조직들이 사용하지 않게 된 ‘비현용기록물’을 보존해 온 ‘장소’이자, ‘보존 기록’ 또는 ‘보존 자료’라는 의미로서 낱장 서류, 필름, 사진, 소리나 영상 기록테이프, 컴퓨터 디스켓 등과 같이 정보로 전환될 수 있는 물리적인 매체를 지칭한다. 따라서 아카이브는 보존 자료의 선별과 평가 그리고 보존하는 것을 책임지고, 보존 자료를 이용할 수 있도록 처리하는 행위나 작업 일정을 의미하며, 기록보존을 책임진 부서나 기록과 자료를 보존한 건물이나 장소를 지칭하기도 한다. 

이처럼 다양하게 정의되는 아카이브에 대해 현대 기록학의 아버지라 불리는 쉘렌버그(T. R. Schellenberg)는 “여러 나라의 아키비스트들이 아카이브라는 용어를 각 각 다르게 정의했다는 점에서 볼 때, 누구도 변경할 수 없고 다른 모든 것에 우선하여 인정되어야 하는 아카이브라는 용어의 최종적이고 궁극적인 정의는 없다”고 얘기하기도 했다. 하지만 ‘아카이브 = 영구기록물’ 또는 ‘아카이브 = 영구기록물관리기관’이라는 정도는 모두 합의할 수 있는 개념이다. 이런 개념을 중심에 두고 나면, 요즘 디지털 시대의 아카이브에 대해서는 다양한 변주의 가능성을 모색해 볼 수 있을 것이다. 

한편 “아카이브는 기본적으로 도구이며 다른 모든 도구들과 마찬가지로 이용하기 위해 관리한다”라는 주장도 있다. 즉 기록관리가 특정 개인이나 기관의 전유물에서 벗어나 공공이 활용(Public Use)하는 것을 지향하는 온라인 네트워크를 기반으로 하는 디지털 시대인 요즘, 결국 아카이브는 ‘영구적인 가치를 지닌 기록물이자, 그 기록물이 여러 가지 목적으로 지속적으로 활용될 수 있도록 관리, 보존하는 기록관리기관’이라고 정리할 수 있다.

이런 차원에서 볼 때 미술의 역사 또한 미술창작활동 전반과 맞물려 있기 때문에 어떤 한 지역의 미술 활동의 자취를 전체적으로 알기 위해서 가장 기본이 되는 것은 바로 미술아카이브의 설립과 이용이라고 할 수 있다. 미술과 더 나아가 건축, 디자인 등의 시각예술을 모두 포함하는 미술아카이브란 ‘미술이라는 특정 활동을 통한 원형적 지식의 축적’인 것이다. 여기서 ‘특정 활동’이라 함은 창작, 지원, 수용, 연구 활동을 포함하는 일반적인 모든 미술 활동을 의미하며 원형적 지식이란 재활용을 목표로 하는 미술사적 가치가 검증된 지식을 의미한다. 마지막으로 축적이라 함은 앞서 이야기한 원형적 지식을 수집, 평가, 보관하는 일련의 아카이브의 역할을 뜻한다. 아트아카이브 즉 미술아카이브란 ‘미술사 측면에서 정보적 가치와 사료적 가치를 인정받는 각종 미술 관련 기록물을 매체에 구분 없이 수집, 평가, 분류, 보존하여 문화공공성의 차원에서 그것을 이용하려고 하는 시민과 연구자들에게 정보를 제공하는 기관’이라고 할 수 있다. 

사회적 제도 또는 인간 활동의 한 영역으로서 미술은 인류의 역사 그 자체와 같은 것이라고 할 수 있으며, 인간의 커뮤니케이션 활동 중 가장 오랜 방법이기도 하다. 또 다른 커뮤니케이션의 방법과 달리 자체의 독자적 미학을 갖고 있다는 점에서 문화의 정점에 있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미술의 창작, 생산, 지원, 연구, 보급 등 전반적인 과정과 맥락을 보존하고 이를 재활용하도록 해서 인류의 삶에 기여하는 일은 국가 또는 지역 사회의 의무라고 본다. 물론 창작의 결과물인 작품의 경우는 이를 수집하고 보존하며 서비스를 하는 박물관 또는 미술관이 있지만, 그 작품이 만들어진 과정과 맥락 그리고 사회와의 소통 과정 등에서 발생하는 각종 기록물과 자료의 보존과 관리 또한 그 못지않게 중요하다. 작품을 둘러싼 전 과정의 이해가 있을 때 원형의 파악과 재현이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미술아카이브의 필요와 요구는 바로 이 지점에서 발생한다. 

미술기록을 수집하고 연구하는 일은 개인의 차원에서 보면 작품의 컬렉션과 마찬가지로 취향의 문제이자 즐거움을 추구하는 취미 활동의 일환이다. 또 예술가의 경우에는 자기 삶의 흔적을 남기려는 기본적인 생존 욕망의 결과일 수 있다. 하지만 개인 차원의 컬렉션을 모아서 제도적 차원의 아카이브를 구축하면 그 의미가 달라진다. 단순한 차원의 개인 자료를 넘어서 사회적, 역사적, 문화적 가치를 갖게 되고, 공공적 성격의 문화유산과 자원으로 전환하는 것이다. 

개인 또는 기관이 실행하는 미술 행위의 결과와 흔적은 작품이란 형태로 완결되며, 대부분의 예술가와 관객은 작품 자체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고 관심의 초점을 맞춘다. 사실 공연예술이건 미술이건 작품을 감상하고 즐기는 일은 일회적인 행위이고, 이 행위들의 반복이 하나의 문화이다. 하지만 이런 문화가 집단적 감동과 반복으로 이어져 사회 전체의 유산으로 전환되면 역사가 되고, 역사가 되는 한 재현과 연구의 필요성이 제기된다. 또 작품 자체를 감상하는 일에서 한걸음 나아가 작품이 만들어진 전 과정 그리고 사후의 반응과 평가를 살펴서 더 깊은 이해와 감동에 다가가려고 한다.

아키비스트가 필요해지는 것은 이 부분에서 부터이다. 미술 작품이 개인의 기억과 감동의 차원을 넘어 집단 혹은 사회가 필요로 하는 재현과 이해의 대상이 되면, 이 일이 가능하도록 작품의 생산 전 과정에서 파생된 정보를 수집하고 관리하고 활용하도록 만들어야할 사회적 제도가 있어야 한다. 그리고 이런 상황을 효율적으로 중개하는 인력이 바로 미술기록의 관리 전문가 즉 아트아키비스트이다.

미술이 갖고 있는 본연의 가치와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고 더 나아가 작품 또는 행위의 생산과 확산의 맥락을 직시하며 이를 적절하게 보존하고 관리해서 활용 가능하도록 만드는 전문가가 바로 아키비스트이다. 그래서 미술을 전문적으로 다루는 아키비스트는 우선 미술의 현상이 이루어지는 과정과 맥락 자체에 대한 이해와 식견이 있어야 한다. 또 미술 전반의 장르와 제도에 대한 기본적 지식을 갖추어야 하고 연구하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 

기존의 미술사나 기록학 그리고 역사학 등 인접 학문의 연구 성과를 흡수해서 업무에 활용하려는 자세 또한 필요하다. 너무도 다양해지고 난해해진 현대 미술의 상황이 만든 역설은 예술은 무엇이라고 특정할 수 없으며 무엇이든 예술이 될 수 있고 언제든 변할 수 있다는 사실을 입증한 것이다. 따라서 아키비스트는 미술의 현상과 제도 자체에 대한 깊은 존중을 가져야 하지만 동시에 매체와 장르, 제도 등에 항상 열린 자세를 갖는 것이 중요하다.

 

박주석 (명지대학교 한국이미지언어연구소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