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주석의 사진살롱 29 – 스케치사진
01/01/2020
/ 박주석

강대석, 양산 천성산, 1935, 한국사진사연구소 인화, 1998,
젤라틴실버프린트

1933년부터 1937년까지 『동아일보』에서 사진기자와 사진부장을 지낸 강대석(姜大奭) 선생이 찍은 경상남도의 소금강으로 불리는 양산의 천성산(千聖山) 정상에서 찍은 일출 모습의 사진입니다. 이 산은 높이가 해발 922미터에 달해서 호미곶이나 간절곶 같은 동해안의 바닷가보다 운해를 뚫고 나오는 일출(日出)을 먼저 볼 수 있다고 합니다. 선생은 이렇게 찍은 천성산의 장관을 1935년 9월 『동아일보』 지면에 「팔도풍광(八道風光) – 경남소금강천성산행(慶南小金剛千聖山行)」이란 제목을 달아 5회에 걸쳐 연재했습니다. 얼핏 뉴스 밸류가 떨어져 신문사진과 어울려 보이지 않을지 몰라도 당시에는 신문 3면의 상단에 매우 중요한 자리에 실렸습니다.

2020년 신년을 맞았습니다. 과거 아날로그 시절 요즘과 같은 신년이 되면 보통 1월 1일자 1면에 동해에서 떠오르는 일출 장면 사진을 싣는 신문이 무척 많았습니다. 해는 매일 떠오르고 분명 같은 해일 텐데 매해마다 꼬박 꼬박 신년의 해가 떠오르는 사진을 싣는 신문들이 참으로 진부하다고 생각한 적이 있었습니다. 요즘에는 거의 쓰지 않는 말입니다만 신문사진의 장르 중에는 ‘스케치사진’이라는 영역이 있었습니다. 강대석 선생이 연재한 그런 사진을 지칭하는 말이 바로 ‘스케치사진’입니다. 과거 신문사 사진부서의 중요한 책무가 바로 새해 일출 장면과 같은 스케치사진을 만드는 일이었습니다. 

뉴스와는 크게 관계없어 보이지만, 춘하추동 계절이 변할 때마다 각 절기의 계절감을 전달하는 사진이 신문의 1면 또는 사회, 문화면에 실리곤 했습니다. 특히 1980~90년대 사이에는 신문사진의 중요한 위치를 점하고 있었으며, 신문마다 다르겠지만 가장 많이 게재될 때는 한 신문에 연간 100회가 넘게 실릴 때도 있었습니다. 보통 평균 삼일에 한 번 정도 게재했다는 계산이고 보면, 당시 신문 독자들이 스케치사진을 얼마다 선호했는지 대략 짐작할 수 있을 것입니다. 요즘처럼 사진이미지가 홍수를 이루고 누구나 사진가인 시대에는 가치가 사라지고 자연히 지면에서도 퇴출되고 말았습니다. 2000년대 이후 디지털 카메라가 본격적으로 보급되기 시작하고 모든 핸드폰에 카메라가 장착되면서 이 ‘스케치사진’은 더 이상 신문에서 찾아볼 수 없게 되었습니다. 

스케치사진이란 용어의 어원은 명확하지 않습니다. 다만 일제 강점 이후 『대한매일신보』의 후신으로 조선총독부의 기관지 역할을 했던 한글판 신문 『매일신보』에서 그렇게 불렀다고 합니다. 그런 관례가 그대로 『동아일보』나 『조선일보』 같은 민간지에 이어졌으며, 형식까지도 그대로 답습해왔다고 합니다. 회화에서 ‘스케치’는 사생을 뜻합니다. 그 자리에서 느낀 대체적인 인상을 간단하게 그림으로 나타내는 일 또는 그 작품을 말합니다. 이마 그러한 미술의 용어를 빌려와 본격적인 뉴스사진과 구별해서 썼을 것입니다. 『매일신보』를 살펴보면 초기의 사진기자들은 풍경 그 자체에 국한하여 계절의 변화를 전달하려 했습니다. ‘스케치사진’은 단순히 시각적 효과를 주는 삽화의 역할 정도였습니다. 

하지만 민간지 시대의 사진기자들은 자연의 현상이나 계절의 변화를 인간과의 상관관계로 연결해 발전적인 ‘스케치사진’을 만들려고 노력했습니다. ‘스케치사진’의 선구자인 강대석(姜大奭) 선생은 1937년 7월 1일자 『동아일보』에 기고한 「신문사진이야기」에서, “사진은 구구한 기사의 설명을 요치 않고라도 단독으로 능히 그 참경을 독자가 통독할 수 있는 이만큼 오히려 몇 백행의 기사보다 일 매의 사진이 뉴스의 가치로 보아 훨씬 나은 경우가 많다”고 전제하면서, 이런 신문사진이 되기 위해서는 인간미가 있어야 하고 때와 장소에 대하여 길게 설명하지 않고서도 사진 자체가 설명적이고 극적이며 미적인 표현을 가져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계절의 변화를 자연에서만 느끼게 하는 것이 아니라, 계절의 변화에 반응해 가는 인간의 얘기를 첨가하려 했던 것이 바로 한국 신문의 ‘스케치사진’ 경향이었습니다. 

우리나라처럼 사계절이 뚜렷한 기후환경을 갖고 있는 나라도 드물 것입니다. 예로부터 내려오는 동지, 입춘, 경칩 등의 스물네 절기는 바로 우리 생활과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나라 신문의 스케치사진도 이 스물네 절기를 중심으로 이루어져 왔으며, 이것은 모든 신문사 스케치사진의 한 관행처럼 되어 버렸습니다. 외국의 신문에서는 보기 힘든 우리나라 언론사들의 독특한 취재와 기사 양식이 만들어진 것입니다. 계절의 변화를 보여주기 위해 사진기자들은 기상과 날씨, 여기에 동물, 식물, 풍속, 인파를 적절히 이용하여 계절감을 보다 더 극적으로 나타내려고 노력해 왔습니다. 이처럼 스케치사진은 간단치가 않습니다. 

1980~90년대 사이에 『동아일보』의 사진부장을 지냈던 고 최인진 선생님이나 『조선일보』의 사진부장을 지내신 이병훈 선생님 같은 분들의 말씀에 따르면 매일매일 사진기자를 괴롭히고 고민스럽게 하는 것이 바로 ‘스케치사진’이었다고 합니다. 계절의 변화나 날씨, 절기를 적절하게 표현한다는 자체가 정말 어려운 취재인 것이고, 매년 반복되는 춘하추동의 계절 변화를 시대마다의 관심에 초점을 맞추면서 어떻게 뉴스로 전달하느냐를 생각하면 더욱 골치 아픈 과제였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한 장의 ‘스케치사진’도 사진기자에게는 매번 새로운 일일 수밖에 없었다고 합니다. 새해를 맞아 매년 다양한 장소의 일출 장면을 실었던 과거 신문의 지면을 회상해 봅니다.

 

독자여러분, 새해에도 건승하시고 저희 연구소에 지속적인 관심과 지도편달 부탁합니다. 2020년 1월 1일 명지대학교 한국이미지언어연구소 소장 박주석이 삼가 인사 올립니다.

 

박주석 (명지대학교 한국이미지언어연구소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