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주석의 사진살롱 28 – 환등(幻燈)과 랜턴슬라이드(Lantern Slide)
12/19/2019
/ 박주석

출처 : 오마이뉴스 2011년 1월 25일자 기사 중에서

한국사진의 본향이라고 칭하는 대구에는 <대구근대역사관>이라는 작은 박물관이 있습니다. 박물관의 규모는 작지만 조선시대까지는 별로 존재감이 없다가 근대도시로 부쩍 성장해서 한국의 3대도시로 발전한 대구의 발전 과정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곳은 대구에 계시는 한국근대시기 사진수집가 정성길 선생의 소장품을 상설로 전시하고 있기도 합니다. 앞의 사진은 전시장의 한 부분을 찍은 모습입니다. 컬러와 흑백으로 구한말 한국의 모습과 서양의 문화유적지를 담은 20여장의 유리 사진을 진열하고 있습니다. 모두 선생의 소장품입니다. 뒤에는 아크릴로 만든 라이트박스(lightbox)를 설치해서 이미지를 알아 볼 수 있도록 했는데, 사진이 유리 위에 포지티브 이미지여서 바로 보이도록 했습니다.

문제는 신문, 방송을 비롯한 다양한 매체에서 역사관을 소개하는 기사에 있습니다. 일반 사람들에게는 별로 중요한 이슈가 아니겠지만, 사진하는 분들은 정확하게 알아야할 오류가 있다는 사실입니다. 위의 사진을 설명한 캡션에는 “정성길 사진연구가의 수집으로 이뤄진 유리원판의 모습. 100여년의 역사를 지닌 자료들이 화려한 채색을 한 채 유리원판에 보존되고 있는 모습이 인상적이다.”라고 적혀 있습니다. 그러면서 본문 기사에는 정성길 선생이 했던 “제가 어렵게 구한 유리원판을 많은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대구의 근대역사를 이번 전시회를 통해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고자 이번 전시회를 열게 된 것”이라는 인터뷰 내용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이 기사를 보면 수집가인 정성길 선생이나 글을 쓴 기자나 위의 전시품 유리사진을 ‘유리원판’으로 인식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사실은 랜턴슬라이드(Lantern Slide)인데 말입니다. 사진사적 지식이 부족한 탓일 것입니다.

유리원판랜턴슬라이드는 유리를 베이스로 해서 이미지를 형성시킨다는 점에서는 같지만, 그것이 만들어지는 방법과 제작 목적 그리고 사료적, 사진사적 가치는 천양지차입니다.

보통 ‘유리원판’은 보통 다른 말로 ‘유리건판’이라고 하는데, 우리나라에서는 ‘유리 위에 새긴 흑백의 네거티브 이미지’를 총칭해서 부르는 이름입니다. 유리원판의 원(原)은 근원을 의미하고, 유리건판의 건(乾)은 말랐다는 뜻입니다. 원판(原板)은 처음 찍힌 오리지널이라는 의미로 번역해서 쓰는 말이고, 건판(乾板)은 사진프로세스의 역사에서 습판(濕板)에 대비해 쓰는 단어입니다. 둘 다 혼용해서 사용하고 있습니다. 1860년대부터 유리건판을 주로 사용하던 서양에서 쓰이던 명칭은 ‘Glass Dry Plate’이고, 학명은 ‘Gelatin Silver Monochrome Negative on Glass’입니다. 은염 감광제를 젤라틴에 섞어 유리판 위에 바르고 빛을 주어 음화의 이미지를 만드는 방식이라는 뜻입니다. <국립중앙박물관> 등 일제 시기 사진기록물을 소장한 기관들이 갖고 있는 사진의 대부분이 유리원판입니다.

반면 ‘랜턴슬라이드’는 원판이 아니라 대량생산된 포지티브 즉 양화 이미지입니다. 간단하게 설명하면 유리에 투명한 포지티브 이미지를 만들고 이를 빛에 비추어 보는 교육 및 엔터테인먼트 매체입니다. 일단 유리원판의 네거티브 이미지를 인화지에 인화하는 대신 다시 유리판에 밀착 인화를 해서 포지티브 이미지를 만들고, 그 위에 다른 유리를 덧붙여서 테이핑을 하는 방식으로 만들어집니다. 정성길 선생 소장품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랜턴슬라이드는 네 가장자리에 테이핑(taping)이 되어 있습니다. 두 장의 유리를 겹쳐야하기 때문입니다. 유리에 인화한 포지티브를 빛에 비추어 보는 목적으로 만들기 때문에, 불빛의 열 때문에 유제가 녹을 확률이 높았고, 이를 방지하기 위해 유제면 위쪽에 유리를 붙여 원래 이미지를 보호하는 방식이 나왔던 것입니다. 다시 말해 ‘환등(幻燈)’을 목적으로 개발되었고, 용도가 그렇다보니 하나의 이미지를 수십 장, 수백 장씩 복제하는 대량생산품이었습니다. 아래 사진은 서양에서 유행한 전형적인 ‘Monochrome Transparencies on Glass’ 즉 랜턴슬라이드의 모습입니다.

Monochrome transparencies on glass

랜턴슬라이드는 1840년대에 팔라델피아의 다게레오타입 사진사였던 랑겐하임(Langenheim)형제가 매직 랜턴 방식으로 자신들의 사진을 볼 수 있는 실험을 시작했고, 유리 네거티브 이미지를 다시 유리에 인화하여 투명한 포지티브 상을 만드는 방식을 통해 이를 개발했습니다. 이들은 1850년 특허권을 얻었고, 히얄로타입(Hyalotype, ‘hyalo’는 그리스어로 ‘유리’)이라고 이름을 지었습니다. 서양에서 랜턴슬라이드는 1870년대부터 유행하기 시작하여 1900년대 초반까지 크게 유행해서 대량으로 생산되었습니다. 흑백이미지가 주를 이루지만 컬러인 경우도 있었습니다. 컬러는 흑백이미지 위에 물감으로 채색을 하거나, 컬러 인쇄처럼 삼색 분해 방식으로 색을 입히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1935년 환등용으로 <이스트만 코닥(KODAK)>의 코닥크롬 (kodachrome) 35mm 컬러슬라이드 필름이 나오면서 사라졌습니다.

정성길 선생의 수집품에 1900년대 전후의 한국을 찍은 랜턴슬라이드 사진이 많은 것은 다 이유가 있습니다. 당시는 서양 사회에서 세계 각국의 자연환경과 풍속을 주제로 한 스테레오사진(Stereoscopic Photography)과 랜턴슬라이드(Lantern Slide) 사진이 크게 유행하던 때였고, 자연히 기업화된 사진 공급 업체들이 많았습니다. 이러한 유행을 따라 한국에도 판매용 사진을 촬영하기 위해 많은 서양사진가들이 파견되었습니다. 1900~1902년 사이에는 미국의 <키스톤(Keystone)>사 소속의 미국인 사진가 줄리언 코크레인(Julian Cochrane), 1902~1903년 사이에는 영국의 <언더우드앤언더우드(Underwood and Underwood)>사 소속의 사진가 허버트 폰팅(Hurbert Ponting) 등이 방문해 엄청난 양의 사진을 촬영했습니다. 이들이 촬영한 사진은 스테레오 카드 형식과 랜턴슬라이드 형식으로 수백 벌씩 제작되어 미국과 유럽 전역에 판매되었고, 현재도 많아 남아있습니다. 1910~20년대 사이에는 우리나라에서도 많이 제작되었습니다. 1903년 설립되어 한국 사진교육을 이끌었던 <경성기독교청년회학교> 즉 YMCA 사진과의 1회 졸업생 고 민충식 선생의 증언에 따르면 1910년대 사진과의 커리큘럼 중 반 이상이 랜턴슬라이드 제작에 관한 것이었다고 합니다. 영화나 필름이 없던 시절 계몽용, 오락용으로 수요가 많았기 때문입니다. 

랜턴슬라이드는 원본에서 다시 이미지를 얻는 방식이기 때문에 일단 오리지널리티가 없습니다. 또 교육용, 오락용으로 같은 이미지를 대량으로 복제해서 시장에 공급했기 때문에 희소성도 크게 떨어집니다. 유리원판과 근본적으로 가치의 차이가 있는 이유입니다.

 

박주석 (명지대학교 한국이미지언어연구소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