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 사회와 아카이브
12/11/2019
/ artachives1

아카이브는 철저하게 근대(Modern)의 산물이다. 물론 근대 이전에도 아카이브의 기능을 수행하는 기관이나 제도가 없었던 것은 아니었고, 어원 또한 라틴어의 아키비움(archīvum)에서 비롯된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어원과는 관계없이 철학적 기반과 실질적 기능이 달랐기 때문에 같은 것으로 보기는 힘들다.

일반 기록학에서는 근대적 의미의 아카이브가 등장하게 된 배경을 크게 세 가지로 정리하고 있다. 첫째는 쿠덴베르크가 발명한 금속활자의 등장과 이로 인한 인쇄술의 발전 및 도서의 증가 현상이었다. 이로 인해 책을 중점적으로 수집하고 서비스하는 도서관과 원본문서를 관리하는 아카이브가 분화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둘째는 문자의 보급이 폭발적으로 증가하면서 생산되는 정보의 양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고 또 이를 해독할 수 있는 인구가 급증한 현상이었다. 이에 따라 고급 정보를 담은 문서를 따로 분리해서 공적으로 보존하고 관리할 필요가 생긴 것이었다. 마지막으로 사회 전체에 영향력을 행사하고자 하는 속성을 가진 근대 국가의 탄생과 성장 또한 중요한 배경이 되었다. 정보와 지식을 독점하고 이를 가공해서 보급하는 과정에서 사회를 통제하고자 하는 근대 국가의 속성이 아카이브를 성립시킨 중요한 이유였다. 

계몽철학을 국가적 차원에서 실천하고자 했던 근대 국가의 시스템은 지식을 생산하는 보급하는 일에 총력을 기울였다. 그리고 대학과 연구소 같은 곳에서 생산한 정보와 지식을 축적하고 관리하며 보급하는 기관과 시스템을 다양하게 구축하기 시작했다. 가장 대표적인 시스템 세 가지가 바로 도서관(Library), 박물관(Museum), 기록관(Archives) 등이다. 그리고 세 기관의 차이는 소장품을 ‘분류’하는 방법에서 명확하게 드러나는데, 분류 방법의 차이는 각 기관의 성격과 목적, 소장품의 특성에 따른 것으로 서로 다른 전통에 의해 만들어져 왔기 때문이었다. 

우선 Library 즉 도서관은 백과사전식으로 미리 결정한 주제 중심의 ‘분류체계’에 따라 개별 항목으로 분류, 기술하는 특징이 있다. 이는 다수로 생산하고 발행한 책과 같은 인쇄물 중심의 소장품을 주로 관리하는 기관의 특징을 반영함과 동시에, 가공한 지식을 축적하고 이를 서비스하는 과정에서 일반 시민의 교양을 함양하려는 계몽적 성격으로 출발한데서 비롯했다.

 Museum 즉 박물관 또는 미술관은 인류를 구성해온 물리적 흔적으로 구성된 문화재, 유물, 작품 등의 소장품을 각각의 개별 ‘프로그램’에 따라 분류하고 기술하는 방법을 쓰고 있다. 이는 원본성을 중심으로 소장품의 인류학적, 역사적, 미학적 가치를 우선으로 하는 기관의 특징을 반영한 것이다. 또 수집, 보존, 조사, 연구를 중시하는 기관의 전통과 문화적 유산에 대한 공중의 향유 기회를 확대하고자 하는 목적에 기인한다. 

이에 반해 Archives 즉 기록관은 전통적으로 기관이 수집한 ‘소장품의 기원과 출처에 따라 분류하고 기술하는 특징이 있다. 이는 신뢰성을 중심으로 컬렉션의 증거적 가치를 중요시 해 온 전통에 기인한다. 역사적 기록물을 보존하고 관리해서 해당 분야의 전문 연구자 및 정책결정자 등에게 정보와 증거를 제공하고자 했던 목적이 있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근대 사회로 진입하면서 도서관과 분리해서 아카이브가 탄생한 직접적인 계기는 근대의 가시적 표상으로 모습을 드러낸 1789년 프랑스 대혁명이었다. 대혁명 기간 혁명을 주도한 세력으로 구성된 신생 의회가 생산한 법령과 포고령 등의 문서를 기탁하고 보존 관리할 필요성이 등장한 것이다. 당시까지 기록의 보존과 관리는 귀족 계급의 전유물이었고, 기록이 곧 역사가 되었기 때문에 그간의 역사는 귀족의 역사였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있었기에 가능한 발상이었다. 우여곡절은 있었지만 혁명을 통해 근대 국가 건설의 기초를 닦았고, 자연히 혁명에 기여한 주체들의 개인 기록을 국가 유산으로 간주해서 공공기록으로 다루게 되었다. 

과거 왕실이나 성직자 및 귀족 등의 기록은 역사를 구성하는 중요한 요소이기는 했지만 기본적으로 사적 기록에 해당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근대적 국가가 등장하면서 부터는 사적 기록이 공적 기록으로 전환되면서 공공기록물의 개념이 등장한 것이다. 기록에서도 사적 영역과 공적 영역이 분화하기 시작한 것이고, 기본적으로는 사적 기록일 수밖에 없는 근대를 이끈 주체의 기록은 선별과 평가를 거쳐 공적 기록이 된 것이다. 그래서 개인 기록물 퐁의 국유화 및 선택적 폐기 절차, 평가 기준과 판단 문제라는 이슈가 등장했고, 기록학의 중요 절차 하나가 마련된 것이다. 

이러한 역사적, 철학적 배경에서 탄생한 프랑스의 아카이브가 제도화 되는 과정에는 네 번의 중요한 변곡점이 있었다. 1789년 9월 12일 프랑스 혁명의회가 만든 시행령에 의해 국가기록관(Archives Nationales)가 창설되었고, 1796년에는 지방정부의 기록을 관리할 지방기록관(Archives Départmentales) 설립 시행령이 발효되었으며, 1808년에는 국가기록관의 기록물 분류 체계를 ‘백과사전식 계통(주제별)분류 방식’으로 채택하는 법령이 만들어졌다. 

하지만 기록물 맥락정보의 해체라는 문제가 발견되자 1841년 계통분류의 한계를 극복한 ‘출처’ 또는 기록의 기원을 존중하는 ‘respect des fonds’의 원칙을 유일한 분류 기준으로 삼는 법령이 제정되었다. 기록학에서 흔히 말하는 ‘원질서 존중의 원칙’에 근거한 ‘출처중심주의’가 법적 강제 사항으로 확립된 것이다. 

한편 기록물 덩어리 즉 ‘fonds’의 기초 단위인 ‘documents’를 사용 가치와 생애 주기에 따라 크게 세 가지로 구분하는 원칙도 성립되었다. 먼저 기록 생산자의 일상적 활동이나 업무를 위해 사용되는 기록물을 ‘현용기록’으로, 기록 생산자의 일상적 활동이나 업무를 위해 가끔 사용될 가능성이 있는 기록물은 ‘준현용기록’으로 보고, 원칙적으로 기록 생산자에게는 사용 가능성이 없는 기록물은 ‘비현용기록’으로 규정했다. 그리고 아카이브는 ‘비현용기록’ 중에 평가를 통해 보존하고 관리할 필요가 있는 ‘기록물을 다루는 기관 또는 기록물 덩어리’라는 개념이 만들어졌다. 

오늘날 기록학 또는 기록관리 연구의 영역 (Records and Archives Studies)은 앞서 말한 것처럼 기본적으로 프랑스 ‘국가기록관’이 만들어지고 50여년이 지나 백과사전식 분류의 한계를 폐기 1841년 프랑스 기록관리법에 명시한 ‘respect des fonds’ * 원칙에서 시작했다. 여기에 더해 현대 기록학의 아버지로 불리고 미국 NARA(National Archives and Records Administration)의 아카이브 부장으로 있던 테오도르 쉘렌버그 (Theodore Roosevelt Schellenberg)가 1956년 출판했던 ‘Modern Archives: Principles and Techniques (University of Chicago Press)’란 책에서 천명한 ‘Records and Archives Managements’의 개념에 바탕을 두고 있다. 이는 생산, 수집 단계에서부터 기록물의 보존과 활용을 염두에 두고 관리하는 방식을 제안한 이론이었다. 

현대 아카이브 이론의 기본 원칙으로서 ‘Principle of Provenance’는 이상에서 말한 두 가지의 역사적 성과를 기반으로 성립한 분류, 기술 방식의 기준이다. ICA가 국제표준으로 제안하고 있는 Fonds(Record Groups) – Series – Files – Items – Documents 등으로 이어지는 계층 레벨 구성 방식의 분류기술 표준인 ISAD(G)가 이 원칙을 바탕으로 만든 대표적 사례이다. 또 최근에는 기록물 생산 조직 및 기관 변화와 부침에 대응하기 위한 ‘기능출처주의’가 등장하기도 했다. 출처가 다르거나 바뀌었어도 그 기능이 같다면 동일한 출처로 취급해야한다는 견해이다. 

 

* respect des fonds : 당시 프랑스 국립기록원 행정기록물 부장으로 있던 나탈리스 드 바이(Natslis de Wailly, 1805-1886)가 기안했으며, 의회의 동의를 얻어 법적 강제력을 부여한 기록물 분류 및 기술의 대 원칙이다.

 

박주석 (명지대학교 한국이미지언어연구소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