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품 위작 사건 사례를 통해 본 미술아카이브의 위상과 권위
11/26/2019
/ artachives1

미술아카이브의 기록물을 위조하는 방식으로 벌어진 희대의 미술품 위작 사건을 소개하고자 한다. 1986년부터 1994년에 걸쳐 영국에서 발생한 <드루에 & 마이어트> 사기 사건의 전말이다. 미술 관련 기록물 컬렉션을 취급하는 기관인 미술아카이브의 역할과 사명 그리고 그 관리 업무의 가치와 중요성을 이해하는데 중요한 시사점을 얻을 수 있을 것으로 본다. 

영국의 화가 존 마이어트(John Myatt)는 영국의 수그날(Sugnall)이라는 마을에서 미술교사로 재직하고 있던 중 아내와 사별했다. 남겨진 두 명의 어린 자식들을 돌보기 위해 교사 생활을 그만두고 집안일에 전념했다. 아이들이 학교에 있는 시간에 아르바이트를 하기로 마음먹은 마이어트는 <Private Eye>라는 격주간 시사 잡지에 “19세기와 20세기 회화 모조품 제작을 해드림. 1점에 150파운드부터”라는 광고를 게재하였다. 광고가 게재된 후 꽤 많은 사람들에게서 주문이 들어왔고, 근대미술 대작들의 모조품을 그려주었다. 네 번째 광고가 게재된 1986년 3월, 마이어트에게 자신을 핵물리학자 존 드루에(John Drewe) 박사라고 소개한 사람이 찾아왔다. 나중에 밝혀진 사실이지만 자신을 믿을 만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도록 신분과 직업, 인품을 꾸며낸 사기꾼이었다. 

두루에는 처음에 마이어트에게 자신의 집을 장식하기 위해 마티스(Matisse)풍의 작품을 그려 달라고 주문했다. 또 얼마 지나지 않아서 파울 클레(Paul Klee)와 마르크 샤갈(Marc Chagall)의 작품들과 17세기 네덜란드 거장풍의 작품을 포함한 또 다른 그림들을 주문했고, 이렇게 단골 고객이 되었다. 아홉 번째 그림을 제공한 직후 드루에는 마이어트 자신이 그리고 싶은 것은 무엇이냐고 물었다. 마이어트는 언제나 입체파의 그림을 직접 그려 보고 싶어 했고, 알베르 글레이즈(Albert Gleizes)의 <군의관의 초상>을 모방한 그림을 그리게 되었다. 바로 이 그림이 모방화가 위작으로 탈바꿈한 시발이 되었다. 드루에는 이 그림을 진본이라고 믿은 경매회사 크리스티(Christie’s Auctions)과 접촉해서 2만5천 파운드(당시 환율로 약 4천5백만 원 정도)를 받고 팔아 넘겼다. 드루에는 마이어트에게 이익금의 절반을 나누어 주었다. 미술품 위작범으로 이들의 활동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은 바로 이때부터였다.

1980년대 중반부터 후반까지 근대 미술 시장은 엄청나게 성장했다. 심지어는 상대적으로 그리 알려지지 않은 작가의 경우도 경매에서 작품이 판매되면 순식간에 유명인사로 만들어 버렸다. 이런 분위기는 마이어트의 그림이 아무런 의심 없이 받아들여지기에는 아주 안성맞춤이었다. 10년 이상의 기간 동안 마이어트는 조르주 브라크(George Braque), 마르크 샤갈(Marc Chagall), 알베르토 자코메티(Alberto Giacometti), 르 코르뷔제(Le Corbusier), 앙리 마티스(Henri Matisse) 같은 근대 미술 작가들의 위작을 그렸다. 드루에는 크리스티, 소더비, 필립 등의 경매회사와 테이트갤러리 산하의 ‘현대미술연구소(Institute of Contemporary Art)’와 같은 주요한 연구기관, 규모가 크고 믿을만한 갤러리들, 대서양 연안의 민간 딜러들에게 마이어트가 그린 위작들을 1만파운드에서 2만 5천파운드 사이의 금액에 팔아서 수입을 챙겼다. 마이어트가 위조 작업을 하면서 두루에로부터 챙긴 총수입은 거의 10만 파운드에 달했다. 소더비의 영국회화부의 전임 부장으로 재직했던 신망 높은 미술딜러이자 고미술 로드쇼 전문가 피터 나훔(Peter Nahum)을 비롯한 당시 유럽 미술계의 유력인사들도 이 위작들에게 속아 넘어갔다.

드루에와 마이어트의 미술작품 위조 행각은 작품에 대한 가짜 프로비넌스(provenance) 즉 관련 원본기록을 만들어 권위 있는 미술아카이브에 끼워 넣는 방식을 활용했다는 점에서 다른 미술품 위조 사건과는 전혀 다른 경우였다. 훗날 경찰에 체포된 마이어트의 자백에 따르면, 자기가 그린 그림들은 위작임을 식별하지 못할 정도로 정교하게 제작된 것이 아니었다고 한다. 마이어트는 1960년대에 처음으로 제조되기 시작한 유화 물감을 사용했는데, 대가들의 작품이 제작된 연대가 그보다는 훨씬 앞서는 것이었기 때문에 과학적인 테스트를 단 한차례 시행하기만 했어도 그것이 위작이라고 금세 탄로 날 수 있었다고 진술했다. 게다가 대다수의 작품들은 그 질적인 수준에서도 의문투성이였다. 대부분의 미술품 위조범들이 결함 없는 작품을 만들어 내는 데 자신들의 힘과 재능을 쏟아 붓는 것과는 달리 드루에는 그림이 형편없어도 적절한 곳에서 제공하는 공신력 있는 서면 기록만 있으면 진본으로 인정받을 수 있다는 점을 알고 있었다. 최근의 인터뷰에서 마이어트는 “대부분의 그림이 그리 잘 그려진 것은 아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위조 프로비넌스가 작품들이 진본임을 보증하는 역할을 했다”고 말했다.

드루에는 미술사에 아무런 배경 지식이 없었지만 미술계와 미술시장이 작동되는 원리는 완벽하게 이해하고 있었다. 그는 마이어트가 그린 그림을 팔기 위해서 꽤 많은 분량의 가짜 프로비넌스를 만들기까지 했다. 특히 자신이 그림의 소유자인 것처럼 행세하거나 또는 자신이 약점을 잡고 있거나 쉽게 움직일 수 있는 지인들을 가상의 그림 소유자로 만드는 데 이용했다. 드루에는 위조한 편지가 진짜처럼 보이도록 디테일을 확보하기 위해 대상 작가들의 유족을 만나기도 했다. 다른 편지를 훔치거나 편지지의 헤더를 복사하고, 당시의 타자기를 사용해서 인보이스를 만들고, 인감과 봉인을 위조하기도 했다. 진본임을 입증하는 문서를 함께 확보하고 있는 위조 작품은 아주 이례적인 경우였다. 드루에는 진짜 원본기록물을 소장한 적당한 미술아카이브를 물색해서 접근하고, 그림의 진본성을 보증하기 위해서 날조된 문서를 거기에 몰래 끼워 넣는 수법이었다.

영국의 유수한 갤러리나 미술관들이 위작 문서를 유명 미술관의 아카이브에서 “찾아낸” 것이라고 이야기 하면 위조 프로비넌스를 세밀하게 조사하지 않으리라는 점을 간파하고 있었던 것이다. 얼핏 보아서 진짜인 것처럼 보이는 이 위조 문서기록들에 힘입어서 마이어트의 그림은 곧바로 진본으로 인정이 받을 수 있었다. 젠킨슨(Jenkinson)에 따르면 “기록의 신빙성은 의심을 받아본 적이 없음을 알기 때문에” 위조 범죄자들은 “시대를 망라해서” 공공아카이브에 위조문서를 반입하기 위해서 꽤나 많은 노력을 기울여왔다고 한다. 드루에가 아카이브에 위조문서를 잠입시킨 첫 번째 인물은 아니지만, 그 기록 잠입의 범위와 정교함은 주목받을 만한 것이었다. 

미술아카이브에 접근하기 위해 드루에는 기관의 성격에 따라서 접근 방법을 달리했다. 1989년에는 Victoria & Albert Museum의 산하의 ‘국립예술도서관’의 회원으로 가입하기 위해서 “핵물리학자 존 코켓(John Cockett) 박사” 명의로 신청서를 작성하여 제출하였고, 별 어려움 없이 회원증을 발급 받았다. 코켓은 10대 무렵에 바꿨던 드루에의 실명이었고, 기입한 주소도 실제 자신의 작업실이었다. 예상대로 심사 결과는 긍정적이었다. 심사평에는 “존 드루에는 성실한 사람이고”라고 시작해서 그가 충분한 자격이 있다고 작성되어 있다. 같은 해 드루에는 르 코르뷔제와 자코메티의 작품(물론 이 또한 위작이다)을 테이트 ‘현대미술연구소’에 기증했다. 미술관 발전기금 조성을 위한 경매에 제공하기 위해서였다. 선의를 바탕으로 한 행동으로 보이도록 만든 다음 드루에는 자신이 연구소의 역사를 연구하는 데 관심이 있다고 이야기해서 신뢰를 얻을 수 있었다. 결과적으로 드루에는 아무런 제한이나 감시 없이 영국 최고 권위의 ‘V&A 예술아카이브’와 ‘테이트갤러리 미술아카이브’에 언제든지 출입할 수 있었다. 

1990년에는 본격적으로 테이트갤러리의 관장과 큐레이터들에게 접근하기 시작했다. 그는 테이트갤러리가 오랫동안 관심을 갖고 있던 비시에르(Roger Bissiere)의 작품 두 점을 기증하겠다고 제안했다. 하지만 작가의 아들이 작품에 사용된 재료에 대해서 의문을 제기하자 곧바로 제안을 취소했다. 대신 테이트 미술아카이브 관련 부서 책임자를 점심식사에 초대해서 아카이브의 목록 작성 프로그램을 지원하기 위해 2만 파운드를 기증하겠다고 제안했고, 실제 기증이 이루어졌다. 테이트 아카이브의 베스 휴턴(Beth Houghton)은 기증이 “아마도 일석이조의 효과를 노린 것 같습니다. 컬렉션과 관련해서 특별한 지위를 확보하고, 해당 기록 컬렉션의 목록 작업을 앞당기고, 그래서 자신의 나쁜 목적에 활용할 수 있도록 아카이브에 출입하는 것을 보장 받으려”고 했을 것이라고 증언했다. 드루에는 “특히 1951년에서 57년까지 런던의 ‘하노버갤러리’와 ‘ICA (International Council on Archives, 국제아키비스트협의회)’ 사이의 협력”이 자신의 연구 주제라고 밝히고 무상출입을 허가받았고, 1991년 여름에는 정기적으로 아카이브를 방문하면서 자신을 대신해서 연구를 수행하는 사람들을 감독하는 모습을 보여주기까지 했다.

드루에는 경비 대상에서 제외되는 특혜를 누렸다. 아무의 감시도 받지 않는 상태로 아카이브 내에 머물 수 있는 기회를 잡았을 때, 마이어트의 그림을 특정할 수 있는 위조한 인보이스, 서신, 사진과 같은 모든 것들을 적당한 기록물 파일 속에 끼워 넣었다. 아카이브에서 경매 카탈로그, 그 가운데에서도 테이트아카이브가 소장하고 있던 지금은 사라진 하노버와 오하나갤러리의 경매 카탈로그를 없애버리고 위조 작품의 목록과 대체이미지가 포함된 복제품으로 바꿔버렸다. 1996년에 경찰이 드루에의 집을 급습했을 때, 프로비넌스를 위조하기 위해서 사용하던 여러 가지 도구와 재료들이 함께 발견이 되었다.

마이어트의 그림은 작품의 연대기적인 특성을 제대로 반영하지 않은 재료들을 사용해서 제작되었기 때문에 전문가들의 조사가 이루어졌더라면 쉽사리 위작이라고 밝혀질 수 있는 아주 허술한 것이었다. 이와는 달리 드루에는 위조 프로비넌스를 만들기 위해서 엄청난 노력과 주의를 기울였다. 수많은 연구소 아카이브에 광범위하게 유포시킨 엄청난 기록들을 만들기 위해서, 10년 가운데 6년 이상을 해당 시기에 사용하던 종이와 잉크를 사용하기도 했다. 테이트와 V&A의 관장이 모두 인정한 것처럼, 현재도 그가 행한 아카이브 기록물 변조의 전모를 파악할 수는 없다. 

이 사건의 수사가 시작되고 전모가 드러난 것은 1995년 드루에와 파국을 맞아 헤어진 동거녀의 신고 덕분이었다. 그녀는 테이트갤러리와 경찰에 접촉했고, 경찰이 집을 급습하자 드루에는 수많은 기록물의 위조 혐의를 입증할 수 있는 증거들을 집안에 남겨 둔 채 도망쳤다. 충분한 물증을 확보한 것으로 판단한 관계 당국이 우선 마이어트를 체포했다. 마이어트는 자신이 작품 위조에 가담했고, 드루에의 행각을 도왔다고 자백했다. 1996년 4월 6일 결국 사기꾼은 체포되었고, 절도, 분식회계, 문서위조의 세 가지 혐의로 기소되었다. 재판은 1998년 9월에 시작되었다. 드루에는 자신이 국제 “무기를 위한 미술(art for arms)”단의 일원이라고 주장하는 등의 치밀한 변론을 이어갔고, 재판은 거의 6개월을 끌었고 판결이 나왔다. 

혐의를 순순히 인정하고 공범자에게 불리한 증거를 제시한 마이어트에게는 징역 12개월이 선고되었고, 실제로 4개월 만에 출소했다. 드루에는 7가지 기소 항목 가운데 6개가 유죄로 인정돼서 징역 6년이 선고되었지만, 고작 2년 만에 출소했다. 드루에가 체포된 후 10년이 지났지만, 거의 200여개에 달하는 마이어트의 위조 작품 가운데 고작 여덟 개가 발견되었을 뿐이다. 마이어트는 출소 이후에 그의 웹사이트를 이용해서 “모작”을 그려서 판매하고 있다. 런던에서 몇 차례의 전시회를 성공적으로 개최하기도 하였다. 심지어 ‘원조 마이어트’를 위조한 작품이 등장하기도 했다. 

현재 영국의 미술아카이브들은 드루에가 도대체 얼마나 많은 어떤 종류의 기록물들을 자기네 아카이브에 끼워 넣었는지를 몰라 전전긍긍하고 있고, 드루에는 이에 대해 전혀 언급을 하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최근의 인터뷰에서 마이어트는 “대부분 내가 그림이 그리 정교하게 잘 그린 것은 아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위조 프로비넌스가 작품들이 진본임을 보증하는 역할을 했다”고 회고했다. 드루에는 그림이 형편없어도 적절한 곳에서 제공하는 공신력 있는 문서 기록만 있으면 진본으로 인정받을 수 있었다는 사실에 무척 놀랐다고 한다. 진본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기록이 갖는 권위와 영향력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  이 사건의 내용은 Rodney G. S. Carter, 「Tainted Archives : Art, Archives, and Authenticity」, 『Archivaria 63』, 2007. 논문을 요약, 재구성한 것이다.

 

박주석 (명지대학교 한국이미지언어연구소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