똑똑한 카메라, 멍청한 카메라, 이상한 카메라
10/29/2019
/ 박평종

카메라가 진화를 거듭함에 따라 종류와 기능도 다양해지고 있다. 휴대폰카메라에서부터 CCTV, 블랙박스카메라, 몰래카메라, 드론카메라, 내시경카메라 등 그 범위는 매우 넓고 점차 확대되는 추세다. 매체가 인간을 확장시킨다는 매체이론의 대전제에 따르면 카메라는 사람 눈의 확장이다. 24시간 보고(CCTV), 하늘에서 보고(드론), 신체 내부를 보는(내시경) 능력은 보통 사람의 눈이 지닌 능력을 한참 뛰어넘는다. 그런데 이 다양한 기능과 용도, 놀라운 성능에도 불구하고 실상 카메라는 아주 간단한 광학장치다. 너무 간단해서 진정 이 ‘원시적인’ 장치가 인간의 삶을 이토록 큰 폭으로 변화시키고 있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을 정도다. 빛을 받아들이는 작은 구멍과 그 구멍을 통해 전달된 이미지를 고정시키는 감광판만 있으면 카메라다. 소위 ‘카메라 옵스쿠라’라 불렸던 장치가 카메라의 원형인 셈인데, 거기에 조리개와 셔터 등 이미지의 품질을 향상시키는 보조 장치가 추가된 것이 오늘날의 카메라다. 물론 디지털 카메라로 진화하면서 구조는 훨씬 복잡해졌다. 마치 요즘 자동차에 장착된 복잡한 전자장치들처럼 말이다. 백미러 자동접이가 없어도 차가 굴러가듯 노출 자동보정장치가 없어도 사진은 찍힌다. 말하자면 없어도 그만인 것이 카메라의 유형을 결정한다.

어쨌든 이 보조 장치 덕에 현재의 카메라는 구조의 단순성에도 불구하고 복잡한 기능을 수행할 수 있다. 사진 찍는 사람이 카메라의 원리와 구조를 몰라도 진화한 카메라는 ‘스스로’ 모든 결정을 내리고 양질의 이미지를 제공한다. 사람보다 ‘똑똑한’ 카메라다. 자동 초점과 자동 노출이 완성된 지는 이미 오래고 야간 촬영 모드나 하이키/로우키 기능, 얼굴 자동인식, 각종 편집기능 등 사람이 공들여 수행해야 할 몫을 기계가 ‘알아서’ 처리하는 것이다. 실상 사람은 특정한 촬영 조건에서 조리개를 얼마나 죄어야 최선의 노출 값을 얻어낼 수 있는지 정확히 판단하지 못한다. 반면 카메라에게 그 판단은 아주 쉽다. 사람에게 쉬운 것이 컴퓨터에게는 어렵고, 반대로 컴퓨터에게 쉬운 것이 사람에게는 어렵다는 모라백의 역설이 카메라의 경우에도 똑같이 적용된다. 결국 사람은 자신에게 어려운 판단을 정확히 내리는 카메라가 ‘똑똑해’ 보일 수 있다.

한편 카메라는 ‘똑똑할수록’ 인간의 의지를 거역한다. 수동 카메라의 경우 ‘일부러’ 초점을 흐리게 찍을 수 있지만 자동 초점이 작동하면 흐리게 찍을 수 없다. 찍는 사람의 뜻을 헤아리지 못하는 ‘멍청한’ 카메라다. 자동 노출 프로그램이 작동하는 카메라로는 결코 노출 부족 상태의 사진을 얻어낼 수 없다. 배경에 초점을 맞추고 싶은데 얼굴 인식 프로그램이 작동하면 얼굴에만 초점이 맞으니 멍청하다고 밖에는 달리 말할 도리가 없다.

아주 오래 전 내가 갖고 있었던 수동 카메라는 제멋대로 노출 값을 결정해서 같은 장면을 찍는데도 한번은 밝고 한번은 어두운 상태가 되곤 했다. 나중에 알게 됐지만 그 카메라의 노출계는 고장 난 상태였는데 작동은 하고 있었다. 그 사실을 모르던 당시에 나는 참으로 이상한 카메라라고만 생각했다. 돌이켜보면 그 ‘망가진’ 카메라는 참으로 인간적이었던 것 같다. 성석제의 단편집 <인간적이다>에는 어리숙하고 실수도 많이 하고 판단력도 떨어지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나온다. 물론 ‘인간적’이라는 말이 뜻하는 바가 그런 종류의 ‘결함’만을 가리키는 것은 아니지만 실수 없이 완벽한 이에게 ‘인간적’이라는 술어를 갖다 붙이는 것은 그리 인간적이지 않다. 그런 사람은 오히려 ‘기계적’이다. 기계에게 실수는 용납될 수 없고, 그래서 고장 난 기계는 폐기의 수순을 밟는다. 한편 기계의 오작동은 때로 놀라움을 가져다준다. 예기치 않았던 뜻밖의 상황에 찬탄을 보내는 것과 같은 이유에서다. 그런데 아쉽게도 망가진 카메라는 고물상에만 있다.

 

박평종 (중앙대학교 인문콘텐츠연구소 연구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