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주석의 사진살롱 24 – 김용권(金容權) 교수를 통한 스티글리츠의 이해
10/24/2019
/ 박주석

김용권 교수의 책 『Alfred Stieglitz and His Time : An Intellectual Portrait』에 실린 알프레드 스티글리츠의 1933년 포트레이트

지난 호에 잠깐 말씀드렸지만 1980년대 당시 사진의 역사를 공부하기 위해 여러 책을 보았습니다. 특히 버몬트 뉴홀(Beaumont Newhall)의 『The history of photography』는 당시 사진사 분야에서 세계적으로 가장 유명하고 영향력이 큰 교과서였습니다. 당연히 국내에 번역서가 나와 있었는데, 최인진 선생이 1972년 번역한 책과 안준천 선생이 1978년 번역한 책이 나와 있었습니다. 둘 다 일본어 중역본이었습니다. 전체적으로 미국 중심의 사진사적 흐름을 파악할 수 있는 정도의 도움은 되었는데, 구체적인 사진의 미학적 설명은 이해하기 무척 어려웠습니다. 다만 이 책은 미국의 사진 세상이 ‘알프레드 스티글리츠(Alfred Stieglitz)란 사람을 중심으로 돌아가는구나’ 라는 사실은 확실히 알게 해주었습니다. 또 버몬트 뉴홀이 스티글리츠에게 잘 보이려고 엄청 애썼다는 생각도 했습니다.

당시 학생 시절이었고 미욱해서였는지는 몰라도, 몇 번씩 읽어도 이 책의 9장 ‘스트레이트사진(Straight Photography)’ 부분과 그 안의 내용에 있는 알프레드 스티글리츠(Alfred Stieglitz)의 ‘이퀴벌런트(Equivalent) 미학’에 대한 설명은 좀처럼 이해할 수 없었던 기억이 납니다. 얼핏 보면, 사진의 기계적 사실성을 존중하고, 직설적으로 아무런 조작 없이 찍는 사진이고, ‘픽토리얼 사진(Pictorial Photography)’에 반대해서 나왔으며, 사진 그 자체의 순수성을 회복하려는 시도였다는 정도로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런 정도로 어느 누구도 부정할 수 없을 정도의 확고한 사진의 예술성을 입증했다는 사실 자체가 좀 미심쩍기도 했고, 개념도 정확하게 이해하기 어려웠습니다.

엉뚱하게도 한 선배의 소개로 알게 된 한 권의 책이 이런 모든 의문을 해소해 주었습니다. 당시 서강대학교 영문과의 김용권(金容權, 1930~ ) 교수가 영어로 집필한 144쪽 짜리 『Alfred Stieglitz and His Time : An Intellectual Portrait』란 제목의 책이었습니다. 우리말로 하면 ‘알프레드 스티글리츠와 그의 시대 : 지성의 초상’ 정도 되겠습니다. 1978년 <서울대학교 미국학연구소(美國學硏究所)>에서 펴낸 <American Studies Series> 중의 한권이었습니다. 책의 제목 그대로 스티글리츠의 전 생애와 업적, 사진작업의 논리와 미학, 미국학(美國學) 또는 미국사(美國史)에서 업적과 위상 등을 세밀하게 기술했습니다. 당시 상황에서 한국 사람이 영어로 집필한 책이 출판되어 있다는 사실도 놀라웠지만, 미국학 또는 영문학 교수가 사진동네 사람들이 사진가로만 알고 있던 스티글리츠의 전기를 이처럼 세세하게 다루고 있다는 사실에 무척 고무되었던 기억이 납니다. 사진을 전공하고 있다는 사실에 자부심을 느낀 첫 경험이기도 했습니다. 

책에는 스티글리츠의 작품 사진 몇 장도 실려 있었고, 상세한 연보도 수록했습니다. 내용은 서문(Introduction)을 제외하고 총 5장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첫 장은 ‘The Origins’라는 제목으로 스티글리츠의 출생부터 성장기의 환경과 과정 그리고 당시 미국사회의 사회상을 다루었습니다. 두 번째 장은 ‘More Developments’라는 제목으로 스티글리츠의 지식습득 과정과 유학 시절 그리고 귀국 초기 활동과 영향 관계에 있던 인물과 저작들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세 번째 장은 ‘Camera Work and American Culture’로 그 유명한 ‘사진분리파’ 결성과 기관지였던 ‘카메라워크’, ‘291화랑’의 운영과 철학 그리고 당시 미국의 문화사적 흐름을 다루었습니다. 네 번째 장이 특히 중요합니다. ‘The Equivalent : Life and Art’라는 제목인데 ‘구름사진’ 시리즈와 핵심 미학인 ‘Equivalent(등가성)’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마지막 장은 ‘The Legend’로 미국사에서 전설적 인물로 남은 스티글리츠의 업적과 미국문화에 끼친 영향 등을 기술했습니다.

『Alfred Stieglitz and His Time : An Intellectual Portrait』의 목차 부분

김용권 교수께서는 스티글리츠가 구름사진 시리즈를 통해 구현한 ‘이퀴벌런트 미학’을 영국의 시인이자 극작가인 엘리엇(T. S. Elliot, 1888~1965)의 시적 개념인 ‘An Objective Correlative’ 즉 ‘객관적 상관물’을 사진으로 구현한 것으로 설명했습니다. ‘객관적 상관물’을 문학 사전에서는 “창작자가 표현하려는 자신의 정서나 감정, 사상 등을 다른 사물이나 상황에 빗대어 표현할 때 이를 표현하는 사물이나 사건을 뜻한다. 즉, 개인적 감정을 그대로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사물과 사건을 통해서 객관화 하려는 창작기법”이라고 정의하고 있습니다. ‘이퀴벌런트’란 구름을 통해 작가의 감정, 사상 등을 객관화 시키는 과정이고, 결과적으로 한 장의 사진은 구름을 사실적으로 보여줌과 동시에 작가의 세계관을 표현한다는 개념입니다. 여기서 구름과 작가의 감정은 동등한 가치를 갖고 있기에 ‘이퀴벌런트’ 즉 ‘등가성’이란 이름을 붙였고, 이름 자체로 하나의 사진미학이 되는 것입니다. 이 책을 통해 비로소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나중에 버몬트 뉴홀의 책을 원서로도 읽어 보았지만, 그도 이렇게 명쾌하게 이퀴벌런트를 설명하고 있지 못합니다.

 

또김용권 교수는 당시로는 매우 드문 ‘미국학’ 전공자였습니다. ‘미국학’은 미국의 문화, 역사, 미술사, 사회학, 정치학, 사회과학 등 미국과 관련된 모든 분야를 모아 연구하고 배우는 학문입니다. 서울대학교 영어영문과에서 학사와 석사를 마치고 강사 생활을 하던 중 서강대학교가 개교하면서 이곳 영문과 교수를 하셨습니다. 교수직을 수행하던 중 같은 과 교수인 미국인 신부 교수님의 권유로 미국의 미네소타대학에 유학해서 미국학 박사를 취득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퇴직 때까지 서강대에 계셨습니다. 과문해서 인지는 모르겠으나 영어학 또는 영문학이 아닌, ‘미국학’ 영어로 하면 ‘American Studies’ 전공을 하고 박사를 받은 최초의 한국인일 것입니다. 그리고 미국학을 하셨기에 문학인이 아닌 사진가인 스티글리츠를 그렇게 심도 있게 연구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김 교수님을 통해 적어도 미국문화사에서 스티글리츠는 사진가 또는 예술가로 가둬 놓기에는 너무 큰 인물임도 알게 되었습니다.

 

박주석 (명지대학교 한국이미지언어연구소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