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증샷 시대
10/02/2019
/ 박평종

유명 관광지에 가서 기념사진을 찍는 사람들을 한동안 이해하지 못했다. 구글에서 에펠탑 이미지를 검색하면 수백만 장의 사진이 나오는데 뭐 하러 또 찍는단 말인가! 게다가 촬영 포인트도 좋고 근사한 배경의 ‘수려한’ 이미지가 많아 그 중 하나를 선택하면 되니 구태여 민폐 끼쳐가며 여행 시간을 낭비할 까닭이 없다고 생각했다. 물론 지금은 그들을 이해한다. 그들에게 중요한 것은 누군가가 찍어 놓은 ‘멋진’ 사진이 아니라 내가 바로 그 자리에 있었다는 사실이다. 초점이 잘 맞지 않아도 상관없고, 에펠탑이 작게 나오더라도 무방하다.  그 사진을 통해 내가 에펠탑 앞에 있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만 있으면 된다. 그리고 모든 사진은 그 점을 보증한다. 소위 인증샷이다.

수많은 종류의 인증샷이 있다. 투표 인증샷이나 불매운동 참여 인증샷이 있고, 체중감량 성공 인증샷도 있으며, 심지어 일부 청소년들 사이에서는 자해 인증샷도 있다고 한다. 따지고 보면 결혼사진이나 졸업사진도 일종의 인증샷이다. 인증, 어떤 행위를 공적으로 입증한다는 뜻이다. 일종의 증명서라 하겠다. 따라서 인증샷은 증명서 역할을 한다. 이유와 목적을 떠나 사진은 이 기능을 충실히 수행한다. 그리고 사진의 인증력은 롤랑 바르트의 표현을 빌자면 재현력을 능가한다. 사진의 인증력은 너무나 압도적이어서 허구로 간주될 만큼 기이한 장면을 찍은 사진에서조차도 그 확실성을 의심할 수 없다. 바르트는 자신을 촬영한 사진에 대해 언제, 어디서 촬영됐는지 기억할 수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사진이었기 때문에” 그곳에 있었음을 부인할 수 없었다고 토로한다. 모두가 경험하는 일이다.

디지털 기술의 등장으로 사진의 시대는 저물고 후기 사진, 이른바 포스트 포토그래피의 시대에 진입했다는 주장이 있다. 아날로그 사진이 도큐먼트, 기록, 실재와 같은 개념들에 의지하고 있었다면 디지털 사진은 간단한 조작과 합성 등을 통해 시물라크룸, 가상, 허구와 같은 개념들에 의존하게 됐다는 것이다. 아주 틀린 말은 아니다. 그리고 인공지능과 접목한 새로운 테크놀로지는 원본 없는 가상 이미지의 생산을 더욱 탁월하게 수행하고 있다. 그런데 아이러니컬하게도 아날로그 사진의 ‘탁월함’으로 평가받아 왔던 인증 기능은 디지털 사진에서도 동일하게 발휘되고 있으며, 나아가 그 영역도 넓어지고 있다. 사진의 인증력은 여전히 압도적이다. 물론 사진 못지않게, 사진보다 뛰어나게 인증 기능이 탁월한 수단도 있다. 공항 입국장에서 활용되는 지문 인식이 그 예다. 실상 지문은 여권에 붙어 있는 사진보다 인증력이 뛰어나다. 홍체인식이나 음성인식도 그렇다. 그런데 모든 인증 수단은 완벽하지 않다. 위변조가 가능할 뿐만 아니라 ‘비슷한’ 개별자가 너무 많기 때문이다. 인증의 어려움은 바로 이 ‘유사성’에서 온다. 여러 가지 인증 수단을 함께 사용하는 까닭은 이 유사성으로부터 오차를 최소화하기 위함이다.

사실 사진은 개별자의 식별을 목적으로 한 인증, 말하자면 내가 나임을 확인하기 위한 인증 수단으로는 부적합하다. 나와 닮은 사람이 많을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사진은 내가 그 곳에 있었음을 인증하는 수단으로는 탁월하다. 사진 속의 인물이 나 자신임이 명백할 경우에만 그렇다. 그런 점에서 SNS에 범람하는 인증샷은 신원 확인이 전제로 깔려있다. 유명 맛집에 갔다 왔다는 인증샷을 보고 사진 속 인물이 바로 그 사람임을 ‘이미’ 알지 못한다면 그 사진은 인증샷으로 기능하지 못한다. 그래서 인증과 식별은 다른 차원의 문제다. 이제 사진은 더 이상 식별의 수단으로 기능하지 못하고 인증의 수단으로만 활용된다. 그리고 사진의 인증력은 법적 실효성도 갖지 못한다. 다만 네트워크상에서 정보의 공유나 ‘놀이’의 차원으로 ‘진화’하고 있다. 인증샷은 이제 그 정도의 의미밖에는 갖지 못한다. 하지만 그 가치는 확장성이 크다.

 

박평종 (중앙대학교 인문콘텐츠연구소 연구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