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주석의 사진살롱 22 – 최초의 사진기술 번역서 – 『자택독습최신사진술(自宅獨習最新寫眞術)』
09/24/2019
/ 박주석

앞서 사진의 원리를 소개한 조선 후기의 외국 서적들에 대해 소개드린바 있습니다. 구한말 사진술이 들어오고 사진관(사진관)을 중심으로 일정하게 사진문화를 형성하기 시작했습니다. 사진 교육도 이루어지기 시작했습니다. 공적인 최초의 사진교육 기관은 <황성중앙기독청년회학교> 즉 요즘의 <서울YMCA>의 교육과정 중 하나로 설치한 사진과였습니다. 1910년의 일이었습니다. 캐나다 출신으로 공학자였던 G. A. Gregg가 교과 과정의 책임자로 부임하면서 목공(木工)과, 철공(鐵工)과 등과 함께 설치했습니다. 1910년 1월 20일자 『대한매일신보』는 이 소식을 다음과 같이 전했습니다. 

“종로청년회관 안 학교에서 사진 과정을 특별히 설립하고 영국인 미술가와 미국 포와에 유학하여 사진 박는 법을 졸업하고 그곳에서 다년 영업하던 한인 최창근 씨를 고빙(雇聘)하여 일반 청원자를 교수한다더라.”

기사를 보면 사진교육을 담당할 교수로 미국 포와(布哇)에서 최창근(崔昌根)이란 분을 초빙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미국 포와는 지금 하와이(Hawaii)를 말합니다. 한국인의 첫 해외 이민지였습니다. 최창근 선생은 구한말 하와이에 노동 이민을 갔던 분으로, 이곳의 사진관에서 사진술을 배웠고 사진사로 활동했습니다. 사진을 가르칠 교수를 찾던 당시 YMCA 교육부서 책임자가 미국인 질레트(P. L. Gillett)였습니다. 그는 미국에서 사진을 교수할 수 있으며 영어와 한국어를 동시에 할 수 있는 분을 찾았고, 수소문 끝에 선생을 모셔왔던 것입니다.

1910년 YMCA 사진과 교수로 본국에 금의환향한 최창근 선생은 조선의 젊은 학도들에게 사진술을 전수하는 한편, 야간에는 틈틈이 여러 곳에 특강을 다니며 사진술을 보급하는 노력을 계속했습니다. 작품 활동을 병행하면서 1914년에는 <성우사진회(成牛寫眞会)>라는 단체가 개최한 사진공모전에서 「한가한 여름날의 적막한 촌가」라는 작품을 출품해서 2등으로 당선되기도 했습니다. 이 사진 작품은 1914년 7월 1일자 『매일신보』에 실렸습니다. 또 효율적인 사진교육을 위해 교과서를 개발해 출판했습니다. 책 이름이 『자택독습 최신사진술(自宅獨習 最新寫眞術)』이었습니다. 말 그대로 ‘집에서 혼자 공부해서 습득할 수 있는 최신의 사진술’이라는 제목입니다. 

자택독습최신사진술 양장 전1책 정가 1원 70전

본서는 미주에 유학 졸업하고 귀국한 후에 중앙청년회관에서 다년 사진술을 교수하던 미술가 최창근 군이 반도(半島) 사진계를 위하여 연구 저술한 구미 최신 유행 사진술이온 바 그 종상(綜詳)한 이론과 가경(可驚)한 실효(實效)는 대방가(大方家)의 찬탄이 분분하오며 미려(美麗) 사진 70도(圖)를 삽입하고 설명은 남녀 물론하고 해득키 이(易)하 압.

 

 발매소 경성 남부 대광교 37통 4호 회동서관(滙東書館), 경성종로중앙청년회

1913년 7월 8일자 『매일신보』에 실린 책 광고입니다. 최창근 선생이 연구, 저술한 것으로 소개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책은 훗날 순수한 연구서가 아니라 미국에서 출판되어 팔리고 있던 책의 번역서라는 사실이 밝혀졌습니다. 물론 약간의 편집은 있었습니다. 미국에서 이민 생활을 했고 영어에 능통했기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그렇다고 당시 미국에서 출간된 사진기술서를 순 국문으로 번역한 선생의 노력이 가볍다는 것은 아닙니다. 당시는 저서와 번역서를 구별하던 시절도 아니었습니다. 영어 원서를 직접 번역한 책은 당시 무척 희귀했고, 한국 역사에서도 거의 최초의 일 중 하나였습니다. 주로 서양 책은 중국이나 일본에서 한문으로 번역한 저술들이 들어와 읽혔던 시절이었습니다. 영어 책을 한글로 직역한 선생의 책은 그래서 한국문화사의 중요한 한 장면입니다.

한편 이 책에는 사진이나 일러스트를 인쇄한 아름다운 도판이 70개 정도가 실려 있습니다. 풍경과 초상, 인테리어 등을 찍은 미국 사진가들의 사진들도 있고, 카메라와 렌즈, 액세서리, 암실 장비 등을 잘 묘사한 일러스트들도 있습니다. 시각적 자료가 이처럼 풍부한 책은 당시로 아주 특별한 예였고, 이런 이유로 책을 보고 공부하면 다른 도움 없이도 스스로 사진술을 습득할 수 있다는 제목을 달았던 것으로 보입니다. 원서에 실린 미려한 도판 세장을 소개해 드립니다. 카메라와 셔터 그리고 영사기를 세밀하게 묘사한 일러스트입니다.

몇 년 전 한미사진미술관이 원로 사진가인 한정식 선생이 소장하고 있는 『자택독습최신사진술』 원본을 영인본으로 복간해서 100부 한정판으로 출판한 일이 있습니다. 원 저자인 볼드윈(Baldwin T. Stith)의 책 또한 국내에 몇 권 들어와 있고, 본 연구자도 한 권 소장하고 있습니다. 최창근 선생의 편집, 번역서와 원본의 서지 사항은 다음과 같습니다.

崔昌根 編纂, 『自宅獨習最新寫眞術』, 경성종로중앙청년회, 滙東書館, 1913(大正2)년.
Baldwin T. Stith, 『Picture Making for Pleasure and Profit』, Frederick J. Drake & Co., Chicago, 1903.

 무엇보다도 『자택독습 최신사진술』은 1910년대에 우리나라에서 사진용어 사용의 현상을 찾아볼 수 있는 중요한 자료입니다. 이 책과 원저자의 책에 나타난 사진용어들은 아마추어 사진가의 등장을 가능하게 했던 코닥(KODAK)의 필름과 핸드카메라(Hand Camera)가 출시된 1900년대 초반을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사진술을 배워 사용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실제로 즐겁게 사진을 박고 만들 수 있는 내용을 담았으며, 번역해서 사용한 용어도 그런 의도를 십분 반영했습니다. 하지만 한계도 보입니다. 원저의 목차 용어와 번역된 용어 몇 개를 비교해 보겠습니다. 총 25장으로 구성한 원서의 장 제목 중 앞부분 일부 번역의 사례입니다.  

“Chapter Ⅱ Hand Cameras. Kodaks.”은 “제이장 수제사진기와 코닥”으로 번역했습니다. 지금의 관점에서 보면 잘못 번역했습니다. 코닥의 핸드카메라는 ‘손으로 만들었다는 뜻’의 ‘수제(手製)사진기’가 아니라 ‘손으로 들고 다닐 수 있는 작고 편리한’ 사진기라는 뜻입니다.  

“Chapter Ⅲ : Viewing Cameras. Features of Cameras – The Swing Back, The Reversible Back. Rising and Falling Front, The Rack and Pinion, The Focusing Screen.”라는 장 제목은 “제삼장 실외용 사진기. 사진기의 구조 – 자유운동 후면, 양용 후면, 승강 전면, 치봉과 아륜(齒捧과 亞輪), 초점마추는불투명유리.”로 번역되어 있습니다. 과거 사진관이나 전문작가들이 사용하는 ‘뷰카메라’의 앞면과 뒷면 구조의 부분에 관한 내용입니다. 번역을 위해 없는 우리말로 바꾸려고 고심한 흔적이 느껴집니다.

 “Chapter Ⅳ : Photographic Lenses – Fixed Focus Lenses, Diaphragms or Stops, Definition of Terms Applied to Lenses.”라는 4장의 제목은 “제사장 사진경옥 – 정착초점경옥, 횡격(橫隔), 경옥에 대한 글자의 뜻.”으로 번역되어 있습니다. 렌즈를 경옥(鏡玉)으로 번역했는데 이는 일본인들의 번역어입니다. 당시 사용하던 용어를 그대로 따른 경우이고, 나머지는 우리말로 바꿨습니다.

최창근 선생이 이 책에서 사용한 사진 용어들을 전체적으로 살펴보면 ‘Shutter – 쉿터’, ‘Orthochromatic – 오도크로매틱’처럼 영어의 표기 그대로 읽은 경우도 있고, ‘Albumen Paper – 알부먼종이’, ‘Shutter Speed – 쉿터급도(急度)’처럼 영어 원문과 우리말을 섞어 쓴 예도 있으며, ‘Carbon Printing – 탄소인화(炭素印畵)’, ‘Dark Room – 암실(暗室)’ 처럼 당시 일본의 사진 용어를 그대로 차용한 경우도 있습니다. 주체적으로 사진의 용어를 만들려고 노력했으나 세상과의 소통을 위해 어쩔 수 없이 일부 일본식 용어를 사용할 수밖에 없었던 선생의 마음이 느껴집니다.

1920년 창간한 민족지 『조선일보』는 창간 100호 기념호를 1920년 8월 24일자로 발행합니다. 여기에는 당시 조선의 각계각층 분야 지도자들이 자신의 영역이 어떤 세계인지를 말하는 특집 기고가 실렸습니다. 그 중 사진계를 대표한 최창근 선생의 기고문이 실렸습니다. 당시 사진에 대한 인식체계를 알 수 있는 중요한 기록이기에 소개합니다. 

사진예술계 중앙기독교 청년회 사진과 사(師) 최창근(崔昌根)

 실지 법률 사업에는 사진이 증거의 확실한 성질을 현출하는 중요물이오 외과술에 들어서는 엑스광선 사진법이 현 세계에 비상한 성공이오 공학에는 사진을 사용하여 □진보되어 가는 것을 기록하며 동판, 목판 등과 인쇄에는 제일로 사용되는 것이오 경찰상에는 분실된 자를 그 친족에게 수색하여 주며 행악하는 자를 재판으로 휴래(携來)하는 말 못하는 기관이오 육지와 해상에서 진행되는 상업에는 말 못하는 사진기가 각종 제조의 발달을 보고하는 것이오 또한 차(此)세계 각 종족의 인민이 여하한 생활을 하며 또한 그 습관이 여하한 것을 호상 통지케 하는 것이라 차외에도 천종만물(千種萬物)에 사진이 상관없는 것이 없어 기기괴괴한 것과 오묘신통한 것과 가경(可驚) 가괴(可怪)한 것과 가희(可喜) 가읍(可泣)한 것을 유루(遺漏)없이 보존하여 다만 현시대 사람의 행복을 증진할 뿐만 아니라 후세 인민으로 하여금 과거 사적을 참고하여 문명발달에 큰 보조물이 되나니 사진술의 공능(工能) 어사(於斯)에 광대하다 하리로다.”

 

박주석 (명지대학교 한국이미지언어연구소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