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주석의 사진살롱 21 – 개화기의 사진 관련 서적
08/21/2019
/ 박주석

박물신편 초집 광론 편 중에서, 서울대학교 규장각 소장

조선말인 1860~80년대 개화선각자들의 필독서로 꼽혔던 『박물신편(博物新編)』 중 「광론(光論)」 편에 실린 도판 중 하나입니다. 각종 광학의 원리를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한 일러스트 모음 정도 됩니다. 위에서 두 번째 도판은 <외경투凹경도(外景透凹鏡圖)>라는 제목의 그림입니다. 암(暗)상자에 오목렌즈를 붙여 외부의 사물이 비례에 맞추어 상자 내부 반대쪽에 거꾸로 비치는 카메라옵스쿠라의 원리가 쉽게 설명되어 있습니다. 맨 아래 오른쪽 도판은 <외성촬입성내경도(外城撮入城內景圖)>라는 제목으로 서양 사람들이 그림 그리는 방법으로 자주 사용했던 ‘텐트형 카메라옵스쿠라’의 원리를 나타낸 것입니다. 그 외에도 원근법의 원리, 렌즈의 작용 등을 설명하는 도판들이 있습니다.

『박물신편(博物新編)』은 조선말 역관이자 개화 사상가였던 역매(亦梅) 오경석(吳慶錫, 1831~ 1879) 선생이 역관(譯官)으로 중국을 오가면서 1853년부터 58년 사이 국내에 들여온 책입니다. 원래 영국에서 발행한 과학 해설서인데, 영국인 선교의사인 홉슨(B. Hobson, 중국명 合信)이 1854년 중국의 상하이(上海)에서 한문으로 출간한 책입니다. 오경석 선생은 당시 『해국도지(海國圖志)』, 『영환지략(瀛環志略)』 등 다른 한문 과학서들과 함께 이 책을 들여왔고, 이후 조선 사대부와 중인 계급을 중심으로 형성되기 시작한 개화사상의 기초 형성에 큰 도움이 되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이 책은 광학, 물리학, 화학, 기상학, 식물학 등에 대한 기초 과학서였는데, 개화파가 본격적으로 형성되기 시작한 1880년대부터는 그들에게 거의 필독서였습니다. 이 시기에는 『박물신편』뿐만 아니라 중국과 일본으로부터 여러 가지 과학 서적이 소개되었고, 외국 문물이 소개되어 개화의 파고를 더욱 높였습니다. 지리학 분야의 『지구도경(地球圖經)』, 국제법의 표준서로 세계 각국에서 이용된 『만국공법(萬國公法)』,종교⦁정치⦁경제 관계 기사를 발췌한 『공보초략(公報抄略)』 등은 개화파 인사들이 반드시 읽어야 할 책이었습니다. 그 중 하나인 『격물입문(格物入門)』이란 책은 일종의 물리학 교과서로 여기에도 역시 사진에 필요한 광학의 원리를 설명한 부분이 실려 있었습니다. 

‘격물(格物)’이란 말은 사서(四書)의 하나인 『대학(大學)』에 나오는 ‘격물치지 성의정심 수신제가 치국평천하(格物致知 誠意正心 修身齊家 治國平天下)’의 첫 번째 학문의 도리입니다. ‘이 세상 사물의 이치를 열심히 공부하는 것’입니다. 요즘으로 말하면 넓게 보면 자연과학 좁게 보면 물리학을 먼저 공부해서 ‘지식을 축적(致知)’하라는 의미입니다. 서양에서 시작한 근대사회(modern society)의 근간이 ‘세상에 대한 지식의 축적이고 이를 계몽이란 도구를 통해 확산’하는 것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근대를 향한 개화 선각자들의 필독서로 『박물신편』과 『격물입문』이 꼽힌 것은 제대로 가는 방법이었습니다. 원근법과 카메라의 이미지 형성 원리 그리고 사진술은 바로 근대의 상징이자 반영인 사실은 주지하는 바입니다.   

한국에 사진을 처음 도입한 선각자 중 한 분인 지운영 선생 – ‘지운영 외전’을 통해 설명 드린 바 있습니다 -의 친동생이 지석영(池錫永, 1855~1935) 선생입니다. 우리나라에 종두법(種痘法)을 처음 들여와서 천연두 퇴치에 공을 세운 분으로 유명합니다. 형제 두 분 모두 개화사상가의 길을 걸었고, 근대 문물 도입에 공을 세웠습니다. 지석영 선생이 개항 이후인 1882년 즉 고종 19년 조선의 개화에 필요한 서적을 상소한 일이 있었습니다.  

『승정원일기(承政院日記) 고종 19년 8월 23일조』에 나오는 내용을 보면 선생은 고종에게 올린 상소문에서 개화를 위해 필요한 시무를 위해 여러 사람들이 꼭 열람해야 할 책으로 『박물신편(博物新編)』, 『만국공법(萬國公法)』, 『조선책략(朝鮮策略)』, 『보법전기(普法戰記)』, 『격물입문(格物入門)』, 『격치휘편(格致彙編)』 등 외국 책과 박영교의 『지구도경(地球圖經)』, 김옥균의 『기화근사(箕和近事)』, 안종수의 『농정신편(農政新編)』, 김경수의 『공보초략(公報抄略)』 등 국내 서적을 열거했으며, 각국의 수차, 농기구, 직조기, 화륜기, 무기 등을 매입하고, 각 고을의 유생과 관리들을 선발해 이를 연구하도록 하자고 주장했습니다.   

사실 『박물신편』이나 『격물입문』이 소개되기 이전에도 조선에는 사진술까지는 가지 않았더라도 카메라옵스쿠라의 원리가 이미 소개되어 있었고, 실제 카메라를 이용해서 그림을 그리기도 했습니다. 다산 정약용 선생이 「복암(茯菴) 이기양(李基讓) 묘지명(墓誌銘)」에 그 과정을 상술한 바 있습니다. 다산의 시문집인 『여유당전서』에 그 내용이 실려 있습니다. 복암이 사망한 때가 1802년이니 그 무렵 쓴 글입니다. 다산 선생은 여기에서 카메라를 ‘칠실파려안(漆室玻瓈眼)’이라고 칭했습니다. ‘암실에 유리 눈이 달린 기계’라는 뜻입니다. 그리고 사용 과정을 다음과 같이 묘사했습니다.   

“복암이 일찍이 선중(先仲) 씨의 집에서 칠실파려안을 설치하고 거기에 비친 거꾸로 된 그림자를 취하여 화상을 그리게 했다. 밖에 앉은 사람이 털끝 하나만 움직여도 상을 그릴 수 없는데 공은 해를 향해 뜰에 설치된 의자에 앉아 그 의연함이 흙으로 만든 사람처럼 이윽토록 조금도 움직이지 않았다. 이 또한 다른 사람은 능히 하기 어려운 일이다.”  

Athanasius Kircher, 대형 이동용 카메라옵스쿠라, 1646. ⓒ Gernsheim Collection.

위 도판은 렌즈가 장착되기 전 카메라옵스쿠라를 이용해서 그림을 그리는 장면을 묘사한 그림입니다. 장면을 복암 선생의 경험에 대입시켜 봅니다. 멀리 보이는 산과 들 대신 복암이 앉아있고, 화가가 카메라 안에 들어가 반대 벽에 거꾸로 비치는 모습을 따라 그리는 장면을 상상해 보면, 다산 선생이 묘사한 ‘칠실파려안’ 이용 방법을 쉽게 이해하실 수 있습니다. 사람이라면 움직이지 않고 계속 앉아있어야 제대로 그릴 수 있는데, 복암 이기양 선생은 요즘 사람들과는 달리 참을성이 대단했던 것 같습니다. 다산 선생은 이 참을성을 의연한 인품으로 보았습니다.

다산 정약용 선생과『오주연문장전산고(五洲衍文長箋散稿)』를 출간한 이규경 선생 등이 연구 대상으로 삼았던 ‘칠실파려안’은 이들 이후에도 관련 연구가 계속 이어졌습니다. 실학과 개화의 시대에 걸쳐서 활동한 최한기(崔漢綺, 1803~1879) 선생이 그 주인공으로, 기의 체(體)에 대한 본질이나 성질을 과학적으로 설명한 「기측체의(氣測體義)Ⅰ」 중 「신기통(神氣通) 제2권 목통(目通)」 편 ‘눈동자는 내외를 출입하는 관문이다(眸爲內外咽喉)’에서 눈에 대한 과학, 철학적 해석을 칠실파려안의 원리와의 인과 관계를 밝히는 연구를 남겼습니다. 1842년의 일입니다. 그 설명을 소개합니다. <민족문화추진회의>의 번역본에서 인용합니다.   

“한 방안에 틈을 남기지 않고 장막을 빙 둘러치고, 오직 창에 작은 구멍 하나를 뚫고 유리 눈을 붙이면, 밖으로부터 나타나는 초목(草木)과 조수(鳥獸)가 모두 방안에 비치는데, 그 지나가는 햇무리와 그림자에 실내의 기가 온통 움직인다. 이것으로 미루어 보면 눈 안에 나타나는 빛은 능히 한 몸의 신기로 하여금 따라 응하게 하여 모두 움직이게 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간혹 신기가, 심상히 여겨 조금 응하거나 전혀 망매(罔眛)하여 응하지 않기도 하는 것은 나타난 빛에 대한 경험 때문이다.”

사진이 도입되기 전까지 조선에서 ‘칠실파려안’은 자연 풍경이나 초상을 그리는 도구로 활용되었고, 더욱 발전되어 학문적 사실 고증을 위해 실험도구로 이용되기도 했습니다. 최한기 선생은 그 대표적인 학자였으며, 사물의 현상을 연구한 그의 책 『심기도설(心器圖說)』에 그 증거가 남아 있습니다. 카메라옵스쿠라는 물상(物像)을 재현하는 방법으로 조선말까지 이어왔습니다. 『박물신편』에 실린 카메라의 광학적 원리가 소개되기 전 이미 조선에서는 카메라를 실생활에서 이용하고 그 경험을 공유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본격적인 사진 도입 이전 관련 지식을 담은 서적들은 이외에도 몇 권 더 있습니다. 한국에서 사진이론 책의 역사는 사진의 역사보다 더 깁니다.

박주석 (명지대학교 한국이미지언어연구소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