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과 누드 그리고 관음증
07/25/2019
/ salon

정운봉, 누드걸작100선집 표지, 1995

# 장면 1. 일제식민지 시기인 1927년 지금은 딴 나라인 북한의 함경북도 길주군에 있던 동해공립보통학교에서 학교의 존폐문제까지 거론된 사진에 관련된 엽기적 사건이 있었습니다. 당시 6학년 학생이던 허길순(許吉順, 19세)이란 여학생이 동옥산(董玉山, 18세)이란 남자에게서 염서(艶書, 사랑을 고백하는 편지)를 받았는데, 학생의 집에서 성씨인 동(董)이란 글자를 읽을 수 있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할 수 없이 다니던 학교의 수석 훈도(일제 당시 초등학교 교사를 지칭) 한모(韓某)에게 편지를 보이고 글자를 물었습니다. 한모 교사는 이를 빌미로 학교가 파한 후 이 여학생을 숙직실로 불렀습니다. 한편으로는 다른 여학생 3명도 불러 “부산(釜山) 어느 곳에서 스타일이 좋은 아이를 뽑아 가지고 당선된 자에게는 상품을 준다”고 속여 각기 다섯 장씩의 사진을 찍었습니다. 특히 허길순에게는 편지로 봐서 남자와 교제한 사실이 있으니 조사해야 한다며 웃통을 벗기고 사진을 찍으려 했습니다. 명분은 “성교(性交)가 있으면 유방(乳房) 빛깔이 변하는 법이니” 사진으로 찍어 과거를 판별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학생이 반항하자 자해를 시도했습니다.

이 사건은 8월 31일자 『조선일보』에 「여자학생의 나체상을 촬영」이란 제목의 기사로 실렸고, 부제는 “여학생 소행을 조사한다고 웃통 벗겨 사진 박히고 자해 – 길주동해공보(吉州東海公普)의 駭擧(해거)”였습니다.

동아일보 1983.01.21자 범인 이동식의 모습

# 장면 2. 1982년 서울 금천구의 시흥동에 위치한 호암산에서 이발소의 ‘면도사’로 일하던 24세의 여성이 독극물로 살해당한 채 발견되었습니다. 경찰의 수사 결과 범인은 이 여성의 애인이었던 이동식(李東植, 당시 42세)이라는 아마추어 사진작가 겸 한 아파트의 보일러실 관리책임자로 일하던 사람이었습니다. 두 사람은 범인 이동식이 다니던 단골 이발소에서 손님과 면도사로 만나서 내연의 관계를 맺었습니다. 당시 ‘한국사진작가협회’ 회원으로 ‘작가증’을 들고 다니던 범인은 애인 김씨에게 “누드모델로 출세하게 해주겠다”고 유혹해서 사진을 찍으러 산속으로 데리고 갔습니다. 그리고 “누드 촬영을 위해 옷을 벗으면 감기가 들기 쉬우니 미리 감기약을 먹으라”고 하며 미리 준비해간 독약을 감기약으로 속여 먹였습니다. 약을 먹인 뒤 여자 모델이 고통스럽게 죽어가는 모습을 찍고, 또 옷을 벗겨 몸부림치는 나체의 모습까지 사진을 21장이나 찍었습니다. 공모전에 출품하고 입상하기 위해 자극적인 장면이 필요한 때문이었습니다.

이 사건은 1983년 1월 21일자 『동아일보』에 「사탄의 곡예(曲藝) 벌인 아마 사진작가」 라는 제목으로 실렸고, “누드모델 되면 돈 많이 번다고 유혹” 이라는 부제가 달렸습니다. 참고로 범인인 사진작가 이동식은 1984년 대법원서 사형 판결이 확정되었고, 1986년 서울구치소(지금의 서대문형무소역사관)에서 형이 집행되었습니다..

# 장면 3. 1987년 11월 19일 오후 태국의 역사유적 도시 ‘아유타야(Ayuthaya)’의 14, 15세기에 지어진 왕궁과 불교 사원 앞에 한 무리의 한국인들이 나타났습니다. 소위 출사 촬영을 위해 한국에서 온 예총 산하 ‘한국사진작가협회’ 소속 회원들과 관광객 15명이었습니다. 남자가 13명, 여자가 2명이었다고 합니다. 이들 일행의 인솔자는 당시 협회의 이사장으로 있던 사진작가 문선호(文善鎬, 1923~1998)였습니다. 이들은 태국 현지에서 섭외한 16세의 태국 소녀를 전라의 몸으로 포즈를 취하게 하고 공개적인 누두촬영 행사를 가졌습니다. 그런데 지나가면서 이를 지켜본 현지인들이 불교와 왕실 역사의 신성함을 모독했다는 이유로 태국 경찰에 신고했습니다. 현지 경찰이 출동했고, 이들은 전원 ‘아유타야경찰서’로 연행되었습니다. 조사 후 관광객이 태국의 법을 잘 몰라서 벌인 일로 정리되고, 훈방조치 되었습니다. 태국 정부가 현지 한국대사관에 항의를 했고, 국내에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이 사건은 1987년 11월 25일자 『동아일보』에 「한국사진작가, 태(泰) 옛 왕궁 앞서 누드촬영」 이라는 제목으로 실렸고, 부제는 “태국인(泰國人)들 한국에 항의 움직임”이었습니다.

최근 유투버(이게 직업명으로 가능한지는 잘 모르겠습니다)로 활동하는 양예원 씨의 고발로 알려진 사진스튜디오의 ‘비공개촬영회’의 누드촬영과 성추행 그리고 사진 유출 사건이 있었습니다. “피팅 모델인 줄 알고 사진 촬영에 참여하게 됐는데 갈아입으라고 준 옷은 포르노에서나 나올 법한 그런 속옷이었고 남성 20명이 보는 앞에서 그걸 입고 선정적인 포즈를 강요받았다는 겁니다. 그때 찍은 사진들이 인터넷상에 버젓이 돌고 있다, 나를 구해 달라. 이런 호소”였다고 한 매체가 정리했습니다. 심지어 사건의 진행자인 해당 스튜디오의 실장이 자살함으로써 더 극적이 되었습니다. 이 사건을 보면서 과거 유사 사건을 정리해 보았습니다. 거의 100년 동안 잊을 만하면 한 번씩 우리 앞에 나타나서 사진 전문가로서 일하는 나 같은 사람의 기를 죽이고, 사진을 찍고 만드는 행위의 본질을 다시 생각하도록 만듭니다.

내막이야 어찌 되었던 이 모든 사건은 사진예술이라는 이름으로 행해지는 ‘관음증’의 산물입니다. 전체가 드러나지 않아서 그렇지 지금도 도처에서 ‘예술’이라는 미명 하에 벌어지고 있습니다. 정신의학자들은 관음증(觀淫症, Voyeurism)을 “일정하게 옷을 벗고 있거나, 성행위 중인 사람을 몰래 관찰하는 행동이나 환상, 성적욕구와 관련하여 반복적으로 강한 성적 흥분을 느끼는 질환”으로 정의합니다. 일종의 성도착증(Paraphilia)입니다. 물론 ‘예술과 외설’의 경계가 지극히 모호하기 때문에 판단이 쉽지는 않지만, 우리나라에서 진행되는 야외와 스튜디오의 ‘단체 누드촬영회’는 ‘관음증’의 집단적 표출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닙니다. 과거에는 주로 야외에서, 요즘은 실내 스튜디오에서 이루어진다고 합니다.

정운봉, 나와 경 표지, 1983

고 정운봉(故 鄭雲鳳, 1920~2017) 씨가 1983년에 펴낸 누드사진집 『나(裸)와 경(景)』은 문화공보부(현 문화체육관광부)의 공식인가를 받은 국내 1호 누드사진집이라고 합니다. 예술로 인정받았다는 것입니다. 본인 스스로 생전에 자랑하던 일이었습니다. 사진의 역사를 명멸한 많은 작가들이 누드를 주제로 작업했습니다. 누드를 통해 나름의 독자적 미학을 구축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누드사진을 하나의 장르로 삼고, 누드사진 촬영대회와 공모전을 개최하고, 야외에서 집단촬영을 하고 더 나아가 해외까지 원정 촬영을 하는 행태는 한국에서만 볼 수 있는 현상입니다. 이미 고인이 되셨지만 정운봉 씨는 이런 현상을 이끈 대표적인 사진작가였습니다. 그가 주관하는 야외 누드촬영 출사에는 참가비가 꽤 비싼데도 보통 버스 2대 정도를 동원할 정도로 사진한다는 사람들이 몰렸다고 합니다. 모델 2~3명 섭외하고 참가자를 모집해서 산으로 들로 출사를 다녔는데, 나중에는 꽤 수익성이 좋은 사업이 되었다고 합니다.

헌데 모델들이 무척 추울 텐데 왜 겨울에도 산에서 들에서 강가에서 옷을 벗겨 촬영할까요? 요즘은 왜 실내로 들어갔을까요? 알다가도 모를 일입니다.

 

명지대학교 한국이미지언어연구소 소장 박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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