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명원(趙明元) 1 – 사진사료 『’66 Korea Photo Almanac 한국사진연감』의 발행인
07/25/2019
/ salon

66 한국사진연감 표지

앞 소식에서 전한 <한국사진문화사>가 1956년에 창간한 『사진문화』의 발행인은 조명원 선생이라는 분이었습니다. 작가로서는 딱히 명성을 얻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1948년부터 나왔던 『寫眞文化』 잡지 창간호와 9호의 표지에 사진을 게재했을 정도로 실력은 남달랐던 것으로 보입니다. 본 칼럼 「사진잡학사전5-사진에 부과한 특별행위세」의 서두에 실린 잡지표지 사진의 작가였습니다. 하지만 6.25전쟁 후에는 잡지나 책을 만들고 글을 쓰고 사진의 역사를 기록하는 일에 전념했습니다. 원래 예술 분야는 작가가 주인공입니다. 작가 말고는 역사에 남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인지 1970년부터는 사진계에서 선생의 자취를 찾을 길이 없습니다.

한국사진의 역사를 공부하는 입장에서 조명원 선생이 가장 고맙게 느껴지는 순간은 1966년에 <한국사진문화사> 명의로 발행한 『’66 Korea Photo Almanac 한국사진연감』이란 사료를 볼 때입니다. 물론 선생이 만든 『사진문화』와 『사진예술』 같은 잡지도 귀중한 사료입니다만, 딱 한번뿐인 1966년도 연감은 1950~60년대 한국사진을 총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도록 하는 체계적인 자료의 집대성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책의 국문 서문과 이를 번역한 영문 서문을 읽어 보면 조명원이란 분이 어떤 분이었는지, 당시의 상황이 어땠는지를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습니다. 문장이 좀 어색해도 전문을 있는 그대로 소개합니다.

“나는 한국 최초의 사진연감을 편집키로 결심했다. 해방 후 20년 동안 한국사단에서 호흡하여온 나로서는 한국사진계의 자라나는 모습을 항시 지켜보고 있었다. 특히 과거 10년을 전후하여 한국사진작가들의 작품이 세계사단으로 진출하기 시작하였고 신인 아마튜어들이 많이 배출되기 시작하였다.

따라서 사진이 국가적으로 사회적으로 많은 인식을 얻게 되어 사진은 오늘날 그의 본연의 위치를 차지하게 되었다. 지금으로서는 사진이 ‘예술이냐? 예술이 아니냐?’라고 왈가왈부하던 그때가 가소롭기 짝이 없다.

본인은 한국사단의 유일한 등대와 같은 존재라고 불리우던 사진잡지 『사진문화』를 폐간한지 5년이 경과되었으나 그 후 오늘날까지 사진잡지가 하나도 출현하지 않는 것을 안타깝게 생각하던 나머지 나는 또 한 번 과거의 노고를 회상하면서 거창한 일인 줄 알면서 맨손으로 이일을 시작하였던 것이다.

이 한권의 사진연감이 비록 1966년도 한국사진연감으로 발간되었으나 처음으로 나오는 연감이니 만큼 그동안의 공간을 메꾸기 위하여 그동안의 걸작들을 작가와 작품본위로 다채롭게 선출하였다. 처음 하는 일이라서 불비한 점이 많았다는 것을 자인하면서 널리 양해를 바라며 앞으로 시정보완하고 나는 여생을 바쳐서 이 사업을 계속할 것을 다짐한다. 조 명 원”

연감에는 총 139명 작가의 컬러 또는 흑백인 139점의 사진이 작품집 형태로 수록되어 있습니다. 당시 원로사진가였던 서순삼, 현일영 선생의 작품부터 중견의 사진가였던 임응식, 이경모 선생 그리고 당시로는 대학생 신분의 신인인 전몽각, 강운구, 박영숙 선생 등의 사진에 이르기까지 다양하게 실렸고, 책 뒷부분에는 각 작품마다 제작에 사용한 카메라 및 렌즈의 종류와 필름, 인화지, 약품 등 기술의 요소와 작품제작 개념 등을 별도로 게재했습니다. 또 「한국사진70년사」라는 제목으로 한국사진사 연표가 수록되어 있고, 「사단 40년사」라는 제목의 임응식 선생의 글도 있습니다. 또 사진관계자 명부 (이름, 주소, 전화, 직업)가 가나다 순으로 소개되어 있고, 전국사진단체명부(단체명, 사무실, 책임자, 전람회, 회원)에는 전국과 지방 조직을 합해 50여 단체의 명단을 수록했습니다.

서문에는 1956년 창간한 『사진문화』가 재정적으로 여의치 않자 폐간할 수밖에 없었고 이를 아쉬워하는 마음이 절절히 담겨 있습니다. 사진계의 소통과 정보 생산에 어려움을 토로하고 있습니다. 선생 자신은 해방 이후에 사진 분야에서 활동하기 시작했다는 사실을 밝히고 있고, 당시 사진문화의 관찰자로서 한국사진의 성장을 매우 흐뭇하게 지켜보아 왔다고 말합니다. 과거 사진의 예술성 여부가 시비 거리였던 때가 있었고, 어이없는 일이었다고 소회를 밝히기도 했습니다.

실제 한국사진사 연구자들은 1950년대 중반부터 60년대까지가 사진의 최전성기였음을 공감하고 있습니다. 이런 전성기였음에도 불구하고 기록과 소통의 창구가 없었습니다. 선생은 자신의 잡지를 한국사진의 유일한 등대였다고 자부심을 드러냅니다. 하지만 유일한 창구였던 『사진문화』 잡지가 재정적인 문제로 이미 1957년에 폐간되었습니다. 다른 매체는 없었습니다. 이런 상황을 일거에 극복하고 당시 사진의 면모를 종합하기 위해 ‘연감’을 발행한다고 말했습니다. 일본이나 미국 등지에서는 거의 매년 발행되고 있던 ‘사진연감’에서 얻은 아이디어였을 것입니다.

강운구, 선, 1966. _66한국사진연감 중에서

이 연감은 당시 사진의 작품 경향과 작가 군을 파악할 수 있도록 합니다. 도록 형태인 연감에 수록된 사진들을 일별하면 대표적인 작가가 누구였는지, 사진은 어떤 성향을 띠었는지 알 수 있습니다. 또 작가, 평론가, 사진관, 사진단체, 카메라 및 재료 상점, 관련 기업 종사자 등 거의 550 항목 정도의 인명과 기관명이 주소, 직종, 전화번호 등과 함께 실려 있어 역사적 사실을 추적하는데 큰 도움이 됩니다. 한국사진 40년의 역사를 서술한 임응식 선생의 글을 보면 자신의 사진인생 행로가 곧 한국사진사인 것 마냥 쓰고 있어서 쓴웃음이 나오기도 합니다. 작가는 역사를 쓰면 큰일 나겠구나 하고 느낍니다. 그럼에도 1950~60년대 한국사진사 기술이 70~80년대보다 용이한 것은 조명원 선생이 만든 『’66한국사진연감』 덕입니다.

당시 연감에 실린 대학생 작가 강운구의 사진 한 컷 소개합니다. 무척 모던하게 보입니다.

다음 칼럼에도 선생의 활동이력과 잡지 이야기가 이어집니다.

 

박주석 (명지대학교 한국이미지언어연구소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