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잡지 『寫眞文化』에 대하여
07/25/2019
/ salon
경기도 파주에 가면 ‘출판문화도시’가 있습니다. 이 출판단지를 성사시킨 주역은 미술 전문 출판사로 유명한 <열화당>의 이기웅 대표로 출판을 평생 업으로 살아온 분답게 <열화당책박물관>을 설립하고 운영하고 있습니다. 박물관의 컬렉션 중에는 아주 귀한 1956년에 발간한 사진전문 잡지인 『寫眞文化』 창간호가 있습니다. 출판사는 <한국사진문화사>, 발행인은 ‘조명원’으로 되어 있고, 발행일을 1948년으로 표기하고 있습니다. 이 잡지에 대한 도서소개 항목은 다음과 같습니다.

“『寫眞文化(사진문화)』 도서소개 : 1948년 7월 창간된 한국 최초의 사진 잡지로, 한국 사진담론의 본격적인 출발점이 되었다. 1950년 6월 18권을 내고 폐간되었는데, 1956년 5월 복간호에는 당시 잡지로는 드물게 누드사진이 실리는 등, 파격적인 시도들이 보인다.”

그래도 명망 높은 출판사와 대표님이 운영하시는데 분명한 오류가 눈에 많이 보이고, 또 저자로 소개된 ‘조명원’은 한국사진의 역사에서 매우 중요한 분인데도 너무 알려지지 않은 것 같아서 이 글을 쓰려고 마음먹었습니다.

먼저 사실 관계입니다. 1948년 창간된 『寫眞文化』를 발행한 출판사는 <조선사진문화사>이었고, 발행인은 ‘이규완’, 편집인은 ‘이동호’였습니다. 월간지를 표방했으나 6.25전쟁 직전까지 부정기적으로 총 12호를 발행하고 전쟁으로 자연스럽게 폐간되고 말았습니다. 마지막 12호의 발행 일자가 전쟁이 시작된 ‘1950년 6월 25일’로 되어 있습니다. 박물관의 18권을 냈다는 기술은 명백한 오류입니다. 잡지 출간의 실질적인 주역이었던 이동호(李東浩) 선생은 발행인과 문제가 있었는지 9호부터는 잡지 편집에서 손을 떼고, 서울 남대문로에 있던 미국공보원 건너편에 <천광사>라는 사진재료상점을 개업하고 운영했습니다. 하지만 전쟁의 와중에 북한으로 넘어가 소식이 사라졌습니다. 발행인이었던 ‘이규완’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월북’인지 ‘납북’인지는 알 수 없습니다.

‘열화당책박물관’이 소장한 『寫眞文化』 창간호는 전쟁 이전의 『寫眞文化』와는 사실상 아무 관계가 없습니다. 먼저 발행 출판사는 <한국사진문화사>이었고, 발행인은 ‘조명원’, 편집인은 ‘이성재’로 되어 있습니다. 1956년 5월1일자 5월호가 창간입니다. 1948년의 잡지와 이름이 같고 판형도 같아서 복간 혹은 속간으로 보일 수 있지만 사진전문지를 표방한 것 말고는 실질적으로는 전혀 다른 잡지입니다. 박물관의 ‘복간호’라는 설명 또한 그래서 오류입니다. 다만 이 잡지의 발행인인 조명원 선생은 전쟁 이전 발행되던 『寫眞文化』에 대한 존경이 분명했고, 그 유산을 잇고자하는 열망이 컸다는 사실은 분명합니다. 잡지 창간 직후인 1956년 7월 28일자 동아일보에는 다음과 같은 기사가 실렸습니다.

“6.25동란으로 중단되었던 월간 사진문화가 조명원 씨에 의해서 지난 5월호부터 다시 계속 출간하게된 것을 축하하는 뜻에서 사진인 일동의 발기로 금 28일(토) 하오 6시부터 동방문화회관에서 ‘사진문화의 밤’을 갖는다고 한다. 회비 500환”

내용으로 보면 조명원 선생은 자신의 잡지 창간이 6.25전쟁으로 어쩔 수 없이 폐간했던 『寫眞文化』의 후속이고, 그 뜻을 계승하는 일이라고 공공연히 밝히고 있었습니다. 또 당시 사진계가 상호간의 소통과 담론의 생산 그리고 정보의 공유를 위해 전문잡지의 출간을 바라고 있었다는 사실도 알 수 있습니다. 사진에 관계하는 분들의 공동 발기로 축하연을 열었을 정도입니다. 그렇다고 56년 창간한 잡지가 48년 창간했던 잡지의 복간이라고 볼 수는 없습니다. 발행처와 발행인이 전혀 다를 뿐만 아니라, 창간호라고 분명히 적시하고 있었고, 통권 호수도 1호라고 적었습니다. 복간으로 볼 수 없는 이유입니다.

1956년 창간 『寫眞文化』는 발행인 조명원 선생의 과거 잡지에 대한 ‘오마주(Hommage)’ 정도로 보면 될 것 같습니다. 출판사 이름에서 ‘조선’을 ‘한국’으로 바꿨지만, 나머지 잡지의 구성과 내용 그리고 디자인까지 그 전 잡지를 그대로 따라하고 있습니다. 원 주인들이 없어졌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기는 했을 것입니다. 이 잡지는 월간을 표방했지만 부정기적으로 총 6권을 발행했었고, 1957년 4월호이자 통권으로는 6호를 마지막으로 내고 폐간하고 말았습니다. 경영 상의 이유였다고 합니다. 조명원 선생의 잡지에 대한 열정을 경영 능력이 따라주지 못한 탓으로 보입니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습니다.

다음 호에는 조명원 선생의 사진 활동과 잡지의 다음 행보에 대해 말씀 드리겠습니다. 이유를 아실 수 있을 것입니다.

 

박주석 (명지대학교 한국이미지언어연구소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