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기자의 신년인사
07/25/2019
/ salon

설빔차림의 아이들-문치장,1936

새해를 맞아 새로 만들어 입는 옷을 ‘설빔’이라고 합니다. 옷이 너무 흔해진 요즘은 설날을 맞았다고 특별히 새 옷을 구해서 입을 필요도 없고 그런 경우도 흔치 않습니다만, 조선 말기부터 1970년대까지의 궁핍했던 시절에는 신분의 고하나 생활 형편에 관계없이 신년을 맞아 설빔을 갖춰 입는 일은 중요한 풍습이었습니다. 설빔은 그야말로 새해맞이의 상징이었습니다. 왜정 때인 1936년 『조선일보』의 1월 1일자 신년호 화보는 바로 설빔을 차려입은 아이들의 사진이었습니다. 신문 제호 바로 옆에 설빔을 차려입는 여섯 명 아이들의 사진 두 장이 위, 아래로 실려 있습니다. 새해맞이 특별 화보이지요. 한국인으로는 최초의 ‘사진기자’였던 문치장(文致暲, 1900~1969) 기자의 사진입니다.

3.1운동 이후 일제가 문화 통치라는 새로운 식민지 정책을 시행하는 과정에서 소위 민족지라고 불리는 『동아일보』와 『조선일보』가 창간한 일은 모두 다 아는 사실입니다. 한글 신문으로 『대한매일신보』의 후신인 『매일신보』가 있었습니다만 조선총독부의 기관지 성격을 갖고 있어서 두 신문의 발간은 우리 근대사의 매우 중요한 사건이었습니다. 전형적인 근대의 성격이 나타나는 매체인 사진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민간지의 등장으로 ‘사진기자’라고 하는 새로운 직업이 탄생했습니다. 이때 시작한 이 직종은 1970~80년대에는 모든 사진학과 졸업생들의 꿈이기도 했습니다.

물론 전에도 『경성일보』, 『매일신보』 등에 일본인 사진기자는 있었습니다만, 1924년 『동아일보』에서 처음 한국인 사진기자를 초빙했습니다. 우리나라 신문사진 역사의 시작입니다. 이때 초빙된 첫 한국인 사진기자가 바로 문치장 선생이었습니다. 선생은 1924년 『동아일보』에서 사진가자로서 이력을 시작했고, 1926년에는 『조선일보』로 옮겨 4년 가까이 일했으며 『시대일보』에서도 잠깐 근무하기도 했습니다. 1930년부터는 다시 『동아일보』 기자로 일하기 시작했고, 중간에 입사와 퇴사를 거듭하는 우여곡절은 있었습니다만 1940년 신문 폐간 때까지 이곳에서 기자 생활을 했습니다.

지금 서울 종로5가 위쪽의 효제동에서 출생한 선생은 ‘휘문고등보통학교’를 졸업하고 ‘조선총독부 토지조사국 제도과’의 직원으로 일하다 1920년 ‘조선총독부 산림과 제도수 겸 사진과 조수’로 임용되면서 사진을 시작했습니다. ‘산림과’에서 관장했던 산이나 나무들을 실측하고 기록하는 방법 중 하나로 사진을 찍어야 했고, 여러 행사나 관련 중요 사건을 촬영하는 일을 수행해야 했기 때문에 자연히 사진술을 익힐 수밖에 없었습니다. 사진 촬영에 자신감을 얻은 선생의 목표는 갓 출발한 민간지의 사진 기자가 되기 위한 꿈으로 이어지게 되었습니다. 그런 이유로 1922년 9월 ‘총독부 사진과 조수’직을 그만두고 ‘경성사진제판소’라는 인쇄소에 취직해서 사진제판 일을 했습니다. 요즘 말로 취직을 위해 필요한 스펙을 쌓는 과정이었습니다. 그리고 ‘사진기자’ 일을 시작했습니다.

왜정 때 ‘사진기자’는 사진을 찍고 현상하고 인화한 다음 제판해서 최종 인쇄 담당에게 동판을 넘겨주는 일까지 진행하는 직업이었습니다. 당시 보통사람들 사이에서 ‘사진기자’는 ‘쇠사진을 만드는 일을 하는 사람들’로 불렸습니다. 사진을 신문에 인쇄하기 위해서는 사진을 제판카메라로 찍어 리스필름으로 만들고, 이를 다시 구리나 아연 같은 금속판 위에 노광한 다음 이를 부식시켜 볼록판을 만드는 과정을 거칩니다. 그런 다음 이 동판을 활자판과 같이 배열해서 인쇄를 하면 지면이 만들어집니다. 사진뿐만 아니라 글자 크기가 큰 신문제호나 제목, 헤드라인, 삽화, 그림 등을 다 이런 방식으로 만들었습니다. 당시 이 동판이 ‘쇠사진’으로 불렸던 것입니다. 한국인 최초의 ‘사진기자’가 되고자 했던 문치장 선생이 2년여 간 제판을 전문으로 하는 인쇄소에 취직했던 이유가 바로 이 ‘쇠사진’ 만드는 기술을 익히고자 했음입니다.

위쪽의 사진은 숭례문을 배경으로 남자아이 3명과 여자아이 3명이 교대로 나란히 서있는 장면으로, 원단(元旦)이란 글자가 좌측에 있고 신문 제호가 우측에 있습니다. 멀리 숭례문 앞으로 조경으로 해 놓은 나무들과 가스등이 있고 아이들 옆으로는 기찻길이 보입니다. 아래 사진은 같은 아이들이 둘러서서 연을 날리고 있는 장면을 찍은 것으로, 우측 아래에는 연을 날리고 있음을 암시하는 연(鳶)자가 새겨 있습니다. 이 시기 문치장 선생은 해당 신문의 기자가 아니었고, 요즘 말로 프리랜서 신분이었습니다. 신년을 맞아 이를 상징하는 사진이미지가 필요한 『조선일보』의 의뢰로 찍은 사진입니다. 그 빈티지프린트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한국이미지언어연구소>가 문치장 선생 사진으로 새해 인사 올립니다. 연구소에 많은 관심과 질정 부탁드립니다. 독자 여러분 새해 하시는 모든 일에 풍성한 결실 있기를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2019년 1월 1일 명지대학교 한국이미지언어연구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