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신정변의 주역 김옥균의 초상사진
07/25/2019
/ salon

스즈키사진관, 김옥균 초상, 젤라틴실버프린트에 채색, 1882년, Terry Bernett Collection 중에서

강화도조약 체결 이후 조선 정부는 일본에 수차례 수신사절단을 보냈습니다. 전에 일본에 파견하는 사신은 통상 ‘통신사(通信使)’라고 했으나, 이때부터 파견한 사절단은 두 나라가 동등한 입장에서 사신을 교환한다는 의미로 ‘수신사’라고 명명했습니다. 급진적 개화파였던 김옥균(金玉均, 1851~1894)은 3차 수신사절단의 일원으로 1882년(고종19) 일본 방문에 나섰고, 도쿄의 사진관을 방문해 전신 초상사진을 찍었습니다. 그 사진이 영국인 컬렉터인 테리 버넷(Terry Bennett)의 ‘사진컬렉션’에 있습니다. 테리가 자신의 컬렉션 중 일부를 소개하고자 출판한 ‘Korea : Caught in Time’이란 책에도 실려 있습니다.

 이들 3차 사절단 일행은 귀국 후 조선 정부 내에서 개화파를 형성하고 갑신정변을 주도했습니다. 박영효(朴泳孝)가 수신사 정사였고, 부사로는 김만식(金晩植), 종사관으로는 서광범(徐光範)이 참여했고, 당시 교리(校理)의 직함을 갖고 있던 김옥균(金玉均) 등은 부사(府使)나 서장관(書狀官) 등의 역할로 참여했습니다. 일본에 머무는 동안 이들은 사진관을 방문하는 등 사진에 깊은 관심을 보였습니다. 이들이 일본에 체류하는 동안 행적을 기록한 박영효의 사화기략(使和記略)을 보면 사진과 관련한 행적을 볼 수 있습니다. 참고로 ‘사화기략’은 정사인 박영효(朴泳孝)가 특명전권대신 겸 수신사(特命全權大臣 兼 修信使)로 일본에 다녀와서 쓴 사행의 전 과정을 담은 일기 형식의 기록입니다.

일기의 1882년 9월30일자에는 일본의 인쇄국을 방문했던 기록이 있습니다. 특히 인쇄국 내의 사진국장과 오찬을 하면서 사진에 대한 관심사에 대해 의견을 나누는 자리를 갖는 장면이 있습니다. 또 일본 주재 영국공사가 박영효에게 자신이 촬영한 사진을 보내주겠다는 얘기를 만찬장에서 언급했다는 내용도 있고, 체류기간 중 사진관을 방문해 사진을 찍었다는 기록도 있습니다. “8월 28일, 맑음, 부사 김만식(金晩植), 교리 김옥균(金玉均), 종사관 서광범(徐光範) 등과 함께 사진국(寫眞局)에 가서 사진을 찍었다(照影)”고 적었습니다. 여기서 사진을 찍는 행위를 한자어 ‘조영’이라고 썼는데, 사진이란 용어가 생소하던 시절 ‘사람의 그림자를 비친다’는 뜻으로 해석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한편 사절단 일행의 사진관 방문에 대해서 당시 도쿄 니치니치신문(東京日日新聞, 폐간되고 지금은 발행하지 않음)은 1882년 10월 27일자 기사에서 “작일(어제) 조선의 사절 박영효 씨, 부사 김만식, 종사관 서광범 그리고 종자 두 명도 같이 오전에 쿠단(九段)의 세이코쿠신사(靖國神社)에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같은 거리에 있는 사진사 스즈키(鈴木眞一)의 사진관에 들려서 일동이 사진을 찍었다”고 보도하기도 했었습니다. 종자 두 명 중에 김옥균도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박영효의 일기는 음력으로 표기되어 있고, 도쿄니치니신문의 발행일은 양력이기 때문에 날자가 다르게 보이나 같은 날짜입니다. 

일본에 체류하는 동안 사절단의 동정이 여러 차례 뉴스로 일본의 신문에 보도되었지만 사진관에 갔던 사실마저 보도된 것은 퍽 이례적인 일이었습니다. 오늘날 사진관에 가서 사진을 찍는 일이 뉴스가 된다는 것은 상상도 못 할 일입니다. 그러나 당시 사진은 그 자체로 흥미로운 개화 문물의 상징이었고, 더구나 외국인들이 입국해 일본인들도 선망하는 사진에 대해 여러 관심을 보인 여러 가지 행위는 충분히 뉴스가 되고도 남을 사건이었을 것입니다. 

사절단이 방문한 사진관은 도쿄의 쿠단자카(九段坂)에 있던 스즈키(鈴木眞一)의 사진관이었습니다. 일본사진의 역사책에 따르면 스즈키는 1866년 일본 초기의 유명한 사진사 시모오카(下岡蓮杖)의 문하생으로 사진에 입문했고, 1873년 도쿄에 사진관을 개업한 영업한 사진사였다고 합니다. 1879년에는 미국에 건너가 사진수정술(寫眞修正術)을 공부한 후 귀국해서 1881년 도쿄의 쿠단자카에 사진관을 다시 설립한 당대 최고의 실력자였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당시 인물사진의 질과 품격은 유리원판 네거티브를 연필로 수정하는 수정술이 좌우하던 시절이었습니다. 

김옥균을 비롯한 조선의 수신사 일행이 이 사진관을 찾게 된 것은 우연이 아니었을 것입니다. 이들은 여러 가지 기록에 나타나 있는 것처럼 사진에 대한 관심은 말할 것도 없고 관련지식도 풍부했었을 것이며, 고위급 외교관으로 사진관에 관한 정보를 일본 고급 관료들에게 얻을 수 있는 위치였습니다. 따라서 일본 최고의 사진관을 찾아 방문하고 사진을 찍은 것은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박주석 (명지대학교 한국이미지언어연구소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