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에 부과한 특별행위세
07/25/2019
/ salon

사진문화 1호 표지

1948년 7월에 창간해서 6.25전쟁 직전까지 <조선사진문화사>가 발행했던 『사진문화』는 해방 후 한국 최초의 사진전문 잡지였습니다. 일제강점기가 끝난 직후의 해방공간에서 『사진문화』가 창간됨으로서 한국의 사진사는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었습니다. 사진에 관한 담론을 신문지면에 비정기적, 단편적으로 발표하던 한계를 벗어났고, 정기적으로 사진 분야의 최신 소식을 전하고 담론을 발표하며 심도 있는 논의와 연구를 시작할 수 있는 장이 만들어졌기 때문입니다. 당시 이 잡지에는 개인적 성향이 강한 단순 의견 제시, 기술적 정보와 지식의 공유, 지역별 사진 단체들의 관계 형성을 위한 소식, 객관성과 논증의 형식을 갖춘 논단, 그리고 사진가들의 현실을 대변하고 있는 사회적 발언까지 다양한 종류의 글이 실렸습니다. 우리 선배 사진가들이 사진에 관한 이야기만으로 한 권을 온전히 채울 수 있는 사진 담론의 ‘전용공간’이었던 셈입니다.

발행인 이규완(李圭琬)은 1937년에 결성된 ‘경성아마추어사진구락부’의 창립멤버였습니다. 이 동아리는 현일영, 박필호, 이해선 등 당시 사진가이자 이론가로 활동하고 있었던 선각자들이 결성한 단체였습니다. 당시 이규완은 한성도서주식회사(漢城圖書株式會社)라는 출판사에 근무하고 있었던 말 그대로 아마추어 사진가였고, 나중에는 백양사우회(白羊寫友會)에도 참여해 활동한 사진인 이었습니다. 당시 사진계의 주도적 인물들과 친분이 있었고 또 출판사에서 일했던 경력도 있었기에 해방 후 사진잡지를 창간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사진문화』의 편집 및 제작의 실질적인 업무는 편집주간인 이동호(李同浩)가 진행했다고 합니다. 이동호는 당시 ‘문진양행’이란 이름의 사진재료상을 운영하면서, 이해선 선생이 대표로 있던 ‘조선사진예술연구회’의 회원으로 활동한 사진가였습니다. 이동호는 6.25전쟁 때 월북했거나 납북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 잡지의 창간호에는 2쪽에 걸쳐 <當局에 呼訴한 寫眞家들의 陳情書>가 전문 그대로 실려 있습니다. 두 개의 서한입니다. 당시 사진 활동 전 분야에 걸쳐 부과되던 ‘특별행위세(特別行爲稅)’를 철폐해달라는 내용의 청원이었습니다. 하나는 1948년 4월에 세무당국에 보낸 서울지역 사진가들의 진정서이고, 다른 하나는 1948년 1월에 발표한 미군 군정청 장관에게 호소하는 부산 사진가들의 청원입니다. 내용은 대동소이한데, 시기적으로 보면 부산 사진가들이 먼서 청원을 했고 세달 후 서울에서 활동하던 사진가들이 합류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서울 사진가들의 진정서는 당시 활동했던 사진가 단체를 망라한 서울사진가협회(서울寫眞家協會) 대표 박필호(朴弼浩), 조선사진예술연구회(朝鮮寫眞藝術硏究會) 대표 이해선(李海善), 서울사진재료상조합(서울寫眞材料商組合) 대표 임태준(林泰俊) 등 세 분의 명의로 작성되었습니다. 그보다 먼저 이루어진 부산 사진가들의 호소문은 경남문화사진협회(慶南文化寫眞協會) 대표 박채홍(朴採洪), 부산예술사진연구회(釜山藝術寫眞硏究會) 대표 임응식(林鷹植), 국제보도경남지사(國際報道慶南支社) 대표 김오경(金五鏡), 부산사진재료상조합(釜山寫眞材料商組合) 대표 김봉만(金奉萬), 부산사진타임스사(釜山寫眞타임스社) 대표 박삼룡(朴三龍), 부산인사진연구회(釜山人寫眞硏究會) 대표 이만진(李萬珍), 부산사진사회(釜山寫眞師會) 대표 김재문(金在文) 및 부회장 이성우(李聲雨) 등 여덟 분의 이름이 부산 사진계를 대표하고 있었습니다. 

그 내용의 대강은 다음과 같습니다. 

“이미 사진이 현대 예술의 중요한 장르로서 세계적으로 빠르게 발전하고 있는 상황에서, 한국의 사진업계는 특별행위세로 인해 그 발목이 묶여있는 실정으로 기계의 생산이나 원료의 수입 등이 매우 어려운 상황이다. 특히 영업사진가들은 비합법적인 방법으로 재료를 수입해야 하는 실정이다 보니 초상사진에 대한 수요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매우 고가의 비용을 치러야 한다. 이 같은 현실이 계속될 경우, 사진 문화의 발전에 막대한 지장이 생기고 사진 수용자들은 계속해서 높아지는 비용을 감수해야만 하고, ‘인플레이션’을 유발하는 등의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사진이 국가발전에 기여할 수 있는 분야가 광범위하고 그것은 문화 뿐 아니라 국가 산업발전과도 연관될 수 있다. 또한 이미 선진국 가에서도 사진이 오락이라는 인식이 불식된 지 오래이며 한국의 사진가들도 오락으로서가 아닌 산업, 예술로서의 사진을 지향하고 있다. 이처럼 사진은 특별한 사치의 행위가 아니고 오히려 현대인의 필수품으로서 존재해야 함을 강력히 주장하는 바, 사치, 오락 행위에 부과하는 특별행위세 철폐는 하루 빨리 이루어져야 하고, 이를 간곡히 청원한다.” 등입니다.

 이 진정서에는 당시 국가적으로 중요한 사진의 담당 분야와 역할을 기록(記錄), 보도(報道), 계몽(啓蒙), 선전(宣傳), 의학(醫學), 사법(司法), 군사(軍事), 상공(商工) 등이라고 정의하고 있습니다. 또 말미에는 ‘특별행위세’ 부과의 핵심 문제점으로 다음 네 가지를 적시했습니다. “1. 사진문화의 발전이 극도로 저해된다는 것. 2. 사진 수용자에게 부담을 과대하게 함으로써 ‘인플레’가 조장된다는 것. 3. 사진업을 계속할 수 없는 상태에 빠진다는 것. 4. 사진업자의 위법 행위를 할 기회를 준다는 것” 등입니다.

 정부가 사진에 부과하던 ‘특별행위세’라는 것은 왜정시대 말기 태평양전쟁이 막바지로 치달으면서 모든 재화와 물자를 전쟁에 총 동원하기 위해 조선총독부가 만든 세금 항목이었습니다. 당시 판단으로 불요불급한 문화 행위에 징벌적 과세를 해서 물자를 절약하고 세금을 더 걷기위한 방안으로 제정하고 시행했습니다. 요즘으로 말하면 특별소비세쯤 되는 그런 세목이었습니다. 이 법은 1943년 3월 31일자 <조선총독부제령 제8호>로 제정되었고, 4월 1일자로 시행했습니다. 시행령의 내용 중 1, 2조를 소개합니다.

 “ 제1조 다음 각 호의 행위에는 이 영에 의하여 특별행위세를 부과한다.

  1. 사진의 촬영·현상·인화 및 복사
  2. 조발(調髮) 및 정용(正容)
  3. 직물 및 피복류의 염색(묘화를 포함) 및 자수
  4. 피복류 기타 조선총독이 정하는 것의 맞춤(편상화를 포함)
  5. 서화의 표장 (表裝)
  6. 인쇄 및 제본.

제2조 특별행위세의 세율은 요금의 100분의 30으로 한다. 다만, 전조 제6호의 행위는 요금의 100분의 20으로 한다.”

시행령은 이 외에도 여러 항목이 있습니다만 핵심은 위 두 조항입니다. 사진의 전 과정을 비롯해 이, 미용과 화장, 옷을 맞추고 장식하는 일, 그림이나 글씨의 표구, 인쇄와 제본 등 중요한 문화적 행위 전반에 요금의 30%를 세금으로 부과하는 법입니다. 한마디로 생존 외의 활동은 하지 말라는 얘기 같습니다. 사진을 찍고 소유하는 일 자체를 일종의 오락이나 사치 행위로 규정한 결과입니다. 일종의 문화말살 정책이 아닌가 싶습니다.

해방 이후 미 군정청의 통치시기를 지나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된 이후까지도 이 법은 여전히 시행되고 있었습니다. 사진을 찍고 인화하고 액자를 해서 걸어 놓고 하는 모든 행위에 엄청난 세금을 부과하는 이 제도는 당시 사진가들에게는 청산 대상 1순위였을 것입니다. 사진계는 예술사진가, 사진관, 사진기자, 사진재료상 할 것 없이 일치단결로 폐지를 호소했습니다. 당시 한국사진의 구성과 인물 관계 그리고 사진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어떠했는지를 보여주는 중요한 사료입니다. 사족입니다만 부산사진계의 진정서를 주도한 당시 ‘부산예술사진연구회’ 대표 임응식 선생은 훗날 한국사진의 가장 영향력이 큰 거물로 성장합니다. 정치력이 가장 앞섰던 분입니다. 

사진가들이 호소가 받아들여진 것인지, 아니면 다른 이유에서 인지는 몰라도 이 시행령은 대한민국정부수립 다음해인 1949년 10월 18일자로 시행한 <법률 제59호>에 의해 폐지됩니다. 법률은 간단합니다. 

“조선이익배당세령, 조선법인자본세령 및 조선특별행위세령은 폐지한다.”

박주석 (명지대학교 한국이미지언어연구소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