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호의 답사스케치2 : 프랑스 인상주의 답사 – 노르망디와 일드프랑스
06/11/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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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월 8일부터 15일까지 프랑스 빠리에 다녀왔다. 모네나 반 고흐 등 인상주의 화가의 주요 유적과 현장을 답사했다. 출발지 아파트 앞 서울의 흰 목련 꽃부터 시작해 알프스산 몽블랑 설경까지 스케치북 7권에 60여 점을 담아왔다.

4월 8일 오후 2시쯤 인천공항에서 알리딸리아(AL ITALIA) 비행기를 타고 서쪽으로 해를 따라 이동하며, 창밖으로 열 시간가량 계속되는 낮 풍경을 즐겼다. 울란바토르 근처를 지나며 중앙아시아의 설경, 굽이치는 강과 어울린 초원이 아스라이 펼쳐졌고, 그 풍경들을 카메라에 담으며 스케치해 두었다. 해지는 지중해와 일몰에 물드는 이태리 반도를 부감으로 감상하며 로마 피우미치노 공항에 내렸다. 로마공항을 거쳐 한밤중 빠리에 도착했다. 민박집에 여장을 풀고 다음 날부터 강행군이었다. 

모네가 즐겨 그린 노르망디 해변과 루앙성당

4월 9일 첫날은 모네가 즐겨 찾아 그렸던 노르망디 해안(Côtes Normandes) 바위벼랑과 에트라타(Étratat) 마을, 옹프뢰르(Honfleur) 항구, 노르망디의 중심도시인 루앙(Rouen)과 루앙 대성당을 답사했다. 인상주의 화가들이 추구한 일광의 변화를 눈으로 확인하였다. 봄 햇살이 만들어내는 프랑스 북서부 지역 경치의 변화를 몸으로 체득하였다.

프랑스의 서쪽, 세느강의 하구인 노르망디 해안은 에트라타 마을과 해변이 어울려 절경을 이루었다. 세 곳으로 뻗어난 끝부분이 크고 작은 코끼리 코 모양이어서 아빠코끼리 바위, 엄마코끼리 바위, 아기코끼리 바위로 불린단다. (도 1) 해안에서 파노라마로 찍어보니 엄마코끼리 바위와 아기코끼리 바위(오른쪽)가 한 화면에 들어오고, 우연치 않게 한가운데 검은새 한 마리가 잡혔다. (도 2)

해안에 절벽을 이룬 바위벼랑은 모네가 즐겨 그린 곳이다. 해안을 따라 옆줄무늬 흰 벼랑풍경은 화폭에 옮긴 대로 적절한 구도가 잡히고 그림이 되는 것 같았다. 흰 벼랑은 미묘한 변화의 바다 물색과 하루 햇살에 물드니, 인상주의 화가들의 눈을 현혹할 만하다고 수긍되었다. 잠깐 머물렀지만, 서해의 일몰 풍경은 모네나 그 당시 화가들이 선호했던 대로 장관을 이룰 거라 상상만 해보았다.

처음 대하는 풍광의 아름다움에 나도 신바람이 일었다. 흥에 겨워 바위 절벽을 여러 점 스케치하였다. 모네를 따라 큰 코끼리바위를 카메라에 담으며 살피니, 가장 북쪽의 아기코끼리 바위 언덕 초원에 지은 돌집 성당 한 채와 작은 소나무가 눈에 띄었다. 영화의 한 장면 같은, 바닷바람을 견디며 굳건히 버틴 성당과 휜 소나무를 여러 장 그려 보았다. (도 3)

 

붉은 색ROUGE’검은 색NOIR’

둘째와 셋째 날은 빠리 시내 답사로 일정을 잡았다. 루브르박물관을 둘러보고, 오르세미술관과 오랑주리미술관에서 모네나 세잔, 반 고흐 등 인상주의 화가의 작품을 살폈다. 언제 봐도 인상주의 작품들은 요동치는 붓질 감각과 색감, 그리고 대담한 화면운영 등 신선하고 매혹적이다. 오랑주리의 원형 공간에 진열한, 모네의 수련 연작을 함께 관람한 최인영이 회화과 출신답게 벅찬 눈물로 감격했다. 그 유명한 루브르박물관과 뽕피두센터를 들렀고, 기메박물관과 몽쏘공원의 세르누치박물관에서 프랑스 소장 동양미술품을 감상하였다. 기메박물관 한국실에서 갸우뚱한 철화무늬 분청자 작은 항아리를 반가운 마음에 스케치했다. 세르누치박물관에서는 2017년 이응노 회고전(LEE UNGNO, L’HOMME DES FOULES)을 갖기도 했다.

개인적으로는 오르세미술관의 기획전 ‘검은 색(NOIR)’이 끌렸다. 모네, 세잔느, 마티스, 피카소 등 18~20세기 흑인을 모델로 삼은 미술 작품부터 아프리카 원주민 조형방식에서 영향을 받은 프리미티즘, 흑인 예술까지, 유럽의 아프리카 식민지 지배 이후 프랑스 근현대문화사를 새롭게 다가가게 해주었다. 얼핏 흑인미술의 부상과 새로운 재평가를 예견해보았다.

또 그랑 빨레의 러시아 ‘10월혁명’(1917년) 관련 기획전 ‘붉은 색(ROUGE)’도 인상 깊었다. ‘루즈’의 시원이랄 수 있는 프랑스혁명(1789년)과 그 연장이랄 지금의 노란조끼 시위와 관련해서 그랬다. 주말에는 시내 주요 거점은 물론, 심지어 그랑 빨레와 건너편 쁘띠 빨레 궁전 미술관마저 장갑차가 배치되어 있었다.

 시간이 넉넉지 않고 시내 관광도 여의치 않아, 겨우 미라보다리 외양을 둘러보는 것으로 만족했다. 다리 너머로 에펠탑과 자유의 여신상이 가까이 보인다. (도 4) 미라보다리를 밟으며, 마리로랑생을 사랑했던 초현실주의 시인 기욤 아뽈리네르(Guiaume Apollinaire, 1880~1918)의 시 ‘미라보다리(LE PONT MIRABEAU)’를 유명한 샹송 가수 이베트 지로(Yvette Giraud)의 노래로 다운받아서, 다리 아래로 강물과 함께 흐르는 사랑과 이별을 들었다. 대학 시절 간혹 노래를 부를 자리에서 웅얼대던 추억도 떠올렸다.

빠리에서 하루 저녁은 리도 쑈를 관람했고, 또 하루 저녁에는 세느강에서 배를 타고 디너 크루즈를 즐겼다. 특히 에펠탑과 자유의 여신상에 떨어지는 조명과 빛의 변화가 반달의 봄밤과 어울려 장관을 이루었다. (도 5)

몽마르뜨 성당 언덕에서 빠리 전경을 굽어보았다. 오래된 도시 빠리는 여전히 여기저기 공사 중이었다. 2001년, 2016년 여름에도 발길 닿는 대로 도로나 건축물들이 공사 중이었는데, 세 번째 방문인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노틀담 대성당도 첨탑과 주변에 지지대 가설물이 설치되어 보수공사 중이었다. 2016년에 내부를 자세히 살폈기에 외관만 보고 지나쳤다. 일행들은 성당 정면에서 단체 사진을 찍었다. 성당을 둘러 보고 난 3일 뒤, 귀국하자마자 안타까운 화재 소식을 접했다.

 

일드프랑스의 봄 경치

나흘째 날에는 프랑스 북부지역 일드프랑스의 봄을 만끽했다. 한국의 봄 날씨와 비슷했다. ‘프랑스의 섬’이라는 뜻의 일드프랑스(Île-de-France)는 빠리를 중심으로 세느 강, 우아즈 강, 엔 강, 마른 강이 빙 둘러 있는 지형이 섬 같다 해서 부쳐진 지명이라고 한다. 끊임없이 펼쳐진 지평선 아래 낮은 구릉지 노란 유채밭과 낮게 자란 초록 밀밭, 그리고 가지런히 정비만을 해놓은 황토 흙밭이 흰 꽃 연두 잎 수목들과 어울려 장관이었다. 반 고흐의 <까마귀가 나는 밀밭> <구름하늘 아래 밀밭> <오베르 근교 밀밭> 등 옆으로 긴 화면의 풍경화가 공감되는, 풍요의 땅다웠다. (도 6) 고속도로에서 봄비도 만났고, 봄비 지난 뒤 해질녘 구름 햇살의 장쾌한 풍경을 만나기도 했다. (도 7) 그리고 마을 골목과 강변에는 봄꽃들이 가득했다. 서울의 꽃과 빼닮은 노란 민들레와 반 고흐가 즐겨 그렸던 보라색 아이리스꽃을 스케치북에 담아 보았다. (도 8, 9)

세 번째 방문한 오베르와 지베르니는 여전했다. 오베르 쉬르 우와즈(Auvers-sur-Oise)에는 반 고흐의 마지막 생활공간과 무덤, 그림 장소를 따라 발자취를 잘 정비하고 구성해놓았다. 한국인 관광객이 가장 많아, 반 고흐의 인기를 실감했다. 상대적으로 폴 세잔느나 꼬로, 이곳 출신 의사 가셰나 화가 도비니(Carles François Daubigny, 1817~1878)에 대해 소홀한 듯해 아쉬웠다. 도비니는 마을을 다녀간 유명화가에 밀려 있으나, 생가와 아뜨리에가 잘 보존되어 있었다. ‘물의 화가’라는 별명처럼 우와즈 강 풍경을 즐겨 그렸고, 아뜨리에를 관람하니 벽면의 닭이나 꽃그림 장식에는 동양적 취향이 역력했다. 도비니는 한국에 좀 생소하지만, 도비니의 풍경화가 몇 년 전 케이옥션에 나오기도 했다. 그리 비싼 값은 아니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도비니미술관에서는 꼬로(Camille Coro, 1796~1875) 기획전을 관람했다. 꼬로는 19세기 인상주의 이전 풍경화가로, 오베르의 마을 골목풍경을 여러 점 남겼던 화가이다. 전시장의 풍경화들은 어두운 숲에 드러나는 밝은 하늘 색감을 통해 인상주의의 여명을 살폈다. 무엇보다 19세기 오베르성을 개조해, 영상으로 인상주의의 형성과 변모, 현대미술에 미친 영향을 소개하는 전시공간들이 좋았다. 

지베르니(Giverny)는일드프랑스와 이어진 노르망디에 속하며 모네(Claude Monet, 1840~1926)의 작업실과 정원으로 널리 알려진 곳이다. 모네가 조성한 연못에는 붉은색 수련잎들이 듬성듬성 물에 떠오랐다. 주변에는 튜립, 철쭉, 수선화, 양귀비, 아이리스, 히야신스 등이 화려한 봄 색깔을 뽐내고 있었다. (도 10) 이들은 서울 시내 거리 장식 봄꽃이나 크게 다르지 않다. 만국 공통의 꽃 문화, 곧 꽃 제국주의를 실감케 했다. 모네의 수련 그림을 따라 그리면서, 봄 연못의 풍경과 각종 꽃을 사생하였다. (도 11) 가히 환상적이라 할, 잽싼 모네의 붓질 감각을 익혔다. 꽃 정원을 굽어보는 2층 건물 아뜨리에 벽면에는 온통 일본 에도시대 우끼오에 판화들이 가득 차 있었다. 연못 정원의 꾸밈과 마찬가지로 모네의 일본 선호를 엿보게 해주었다.

지베르니미술관에서 마련한 ‘모네와 오뷔르땡(Monet-Auburtin, Une Rencontre Artistique)’ 두 작가의 비교 전시가 눈길을 끌었다. 특히 오르세미술관 소장 작품을 포함해 노르망디 해안 풍경화들을 실견하게 되어 반가웠다. 오베르땡(Jean Francis Auburtin, 1866~1930)은 모네보다 한 세대 아래로 우리에겐 좀 생소한 화가이다. 빠리의 에꼴 드 보자르 출신 상징주의 화가로 신화적 소제를 즐겨 그렸으며, 인상주의 화풍을 평면적으로 재해석했다. 모네 그림에 비할 때, 좀 딱딱해 보였다. 

이번에 처음으로 지베르니와 멀지 않은 보쉬 센느의 고암 이응노 작업실을 방문했다. 미리 연락하지 않고 주소로 네비게이션에 의존해 찾는 바람에, 고암의 미망인 박인경 선생님과 아들 이융세 선생님께 당혹감을 안겨주었다. 두 분 다 화가로 활동 중이다. 마침 내가 홍성의 고암 이응노 생가 기념관 설립부터 명예관장과 운영위원장을 지내며 박인경 선생님과 안면을 텄기에 일행과 사진을 찍고, 주변을 둘러볼 수 있었다. (도 12) 세느강을 굽어보는 언덕에 잡은 터가 최고였다. 한옥지붕 너머로 전개된 세느강 풍경을 스케치해보았다. (도 13)

 

유럽 학예문화의 진수를 보며

이번 프랑스 답사는 명지대학교 문화예술대학원 미술사학과를 졸업한 유수일, 이군무, 티제이 김, 윤영주, 김수미, 최인영 여섯 명과 다녀왔다. 이들은 2016년에 입학한 동기로 결속력이 좋은 팀을 이루었다. 만학도인 유수일과 이군무 두 사람은 한국도자사로 석사논문을 쓰고, 박사과정에 진학했다. 나는 이들의 졸업여행을 겸한 프랑스 여행에 초청을 받아 동참했던 셈이다. 이에 대한 답례로 여섯 명에게 그림 한 점씩 그려주었다.

뉴요커인 티제이 김이 동기모임을 이끌어온 것처럼, 이번 여정도 그가 주도했다. 저녁 리도 쑈의 관람이나 세느강에서 선상 저녁 식사, 쌩 뚜앙 플리마켓 돌아보기 등은 티제이 김의 기획이었다. 티제이는 쌩 뚜앙 어느 갤러리에 걸린 피카소의 판화인쇄 인물 드로잉 소품들을 답사기념으로 일행들에게 선물했다. 마침 빠리에서 티제이 김의 전문분야인 고서를 중심으로 아트페어가 대규모로 열려, 우리 답사는 이 행사의 참여를 겸한 것이었다.

 4월 12~14일 그랑 빨레(GRAND PALAIS)에서 열린 고서와 미술품들(LIVRES RARES & OBJETS D’ART)은 유리 천정의 대형 중정에 부스 별로 진열되었다. (도 14) 티제이 덕분에 오픈 첫날 브이아이피 행사를 참여하였다. 한국의 참여 부스는 없었고, 티제이가 세계 고서와 고지도계 마당발로 일당백 역할을 하는 것 같았다.

위고나 보들레르 등의 초간본이나 15~19세기 유럽에서 제작된 고지도를 보며, 켜켜이 쌓인 유럽의 학문과 예술을 새삼 살피게 되었다. 유럽 외에도 다양한 지역의 문화가 소개되었다. 한 고서 부스에서 하바나 항구와 전경을 담은 <쿠바 섬 풍경화>가 눈길을 끌었다. 1856년 유럽 작가의 석판화로 그림의 아래 들에 소 두 마리로 써레질하는 장면을 보니, 단원 김홍도의 풍속화 겨리소의 <쟁기질>이 떠올라 그랬다. 소의 목 부분에 설치된 멍애도 비슷해 농업문화의 유사함을 실감했다. 겨리소는 오른쪽에 마라소라 하여 능숙한 놈을 배치해 미숙한 놈과 짝을 이루게 한다. 쿠바의 소 부리기도 이와 유사해 보인다. 마침 부스의 주인이 티제이와 잘 아는 처지여서 사진을 찍을 수 있었다. (도 15, 16)

또 이 부스에서 중국의 풍속화첩을 발견했다. 부유층이나 관료의 이동하는 가마, 악대, 칼춤이나 격투, 관아의 형벌 등이 담긴, 19세기 말~20세기 초 마카오나 홍콩 등지에서 판매되었던 화첩이다. (도 17) 화첩의 풍속도들은 먹과 채색으로 그리면서도 서양화 입체화법이 뚜렷한 편으로, 마치 구한말 기산 김준근의 풍속화첩을 연상케 해 흥미로웠다. 이 중국 풍속화첩은 중국 종이가 아닌 서양의 얇은 반불투명지에 그린 것이고 꾸밈새는 거칠지만, 서양식 앨범 형태여서 새롭게 다가왔다.

중국과 일본 서적과 그림들이 여기저기 상당히 많은 부스에 출품되었다. 17~19세기 유럽의 중국과 일본문화에 대한 관심을 엿볼 수 있었으며, 특히 인상주의에 영향을 끼친 에도시대 이후의 우끼오에(浮世繪) 다색판화 작품들이 많아 놀랐다. 상대적으로 한국유물은 전혀 보이지 않아 조금은 섭섭했다.

 

귀국 길의 알프스 설경

4월 14일 오후 귀국 길에 올랐다. 샤를 드골 공항을 출발해 로마로 가는 비행기에서 굽어보는 하얀 설산경이 오후 햇살을 받아 정말 눈이 부시게 아름다웠다. 몽블랑과 알프스산맥이 그렇게 전개되었다. (도 18) 사진을 찍고 빠르게 스케치했다. 로마에서 인천공항으로 귀국하는 항로에서는 비행기를 타자마자 유럽의 구름 아래로 지는 일몰을 감상했고, 중국의 서해안인 황해로 해가 반바퀴 돌아서 뜨는 일출 때까지는 밤을 끼고 이동했다. 15일 아침 인천공항에 도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