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관이 살아있다
05/09/2019
/ 박평종

어린 시절, 그러니까 1970년대 초반 무렵 목포역 오거리 인근에 허바허바사장이 있었다. 근처를 지날 때마다 나는 ‘사장님이 외국인인가?’, 이렇게 생각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나중에 사장이 직위를 뜻하는 단어가 아니라 사진관을 뜻하는 사장(寫場)임을 알게 됐지만 당시에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물론 그 때도 사진관이라는 명칭이 훨씬 보편적이긴 했다. 요즘도 그렇다. 전통적인 이름의 사진관이 다수지만 포토 스튜디오도 있고, 특정 분야를 전문화시킨 베이비 스튜디오나 웨딩 스튜디오 등 다양한 이름이 혼재하고 있다. 이들의 이름은 달라도 목적은 같다. 모두 사장, 그러니까 사진 찍는 장소다. 그런데 거기서는 사람 얼굴만 찍는다. 그래서 정확히 말하자면 초상사진관이다.

잘 알려져 있듯 사진술은 발명 초기부터 초상 제작에 활용됐다. 심지어 지젤 프로인트는 사진이 값비싼 초상화를 대체하기 위한 수단으로 발명됐다는 ‘과장된’ 견해를 펴기도 했으나, 초상이 사진술을 활용하여 생산하는 이미지 중 가장 보편적인 대상임에는 틀림이 없다. 초상사진의 전성기였던 ‘명함판 사진’ 시대에 디스데리가 운영하던 사진관의 고객은 일일 평균 200여명이었고, 1861년 파리의 경우 사진관에 종사하던 사람이 33,000여명이었다는 통계가 있으니 그 규모를 가늠해 볼 수 있다.

어쨌든 사진관은 사람의 얼굴을 찍는 특별한 곳으로 존속해오고 있다. 과거의 사진관이 특별했던 데는 까닭이 있다. 아무나 사진을 찍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카메라는 고가였고, 조작도 어려웠으며, 특히 현상과 인화에는 고도의 기술이 요구됐다. 소형 카메라가 대중화되고 현상소가 출현하면서 상황은 달라졌지만 그래도 사진관은 여전히 특별했다. 사진의 대중화는 곧 초상사진의 질적 저하를 수반했기 때문이다. 그럼 현재는 어떨까? 디지털 카메라의 보급, 특히 휴대폰 카메라의 성능 향상으로 사진의 물리적 품질은 저절로 보장된다. 현상, 인화를 하지 않더라도 고품질 데이터를 모니터로 볼 수 있고 저장과 전송도 용이하니 굳이 사진관에 가서 초상사진을 찍을 필요가 없다. 사진사의 요구에 따라 억지로 웃거나 포즈를 취하지 않더라도 스스로 거울 보듯 표정 바꿔가며 셀카를 찍을 수 있으니 사진관에 갈 이유가 없는 것이다. 그러나 사진관은 사라지지 않았다. 사진관에서 찍으면 다른가?

앙드레 바쟁은 미라 콤플렉스가 조형예술의 기원이며, 그것이 이후 초상화에 대한 욕망으로 승화됐다고 주장한다. 이 욕망은 다시 둘로 갈린다. 하나는 인물의 외관을 보존함으로써 시간을 유예시키고자 하는 주술적 욕망, 본질적으로는 여전히 극복하지 못한 미라 콤플렉스의 변형, 결국 외관의 유사성에 만족하는 그런 욕망이다. 다른 하나는 외형적 유사성을 넘어 이상적 세계를 구축하고자 하는 욕망이다. 이 두 번째 욕망이 전자의 ‘외형적 리얼리즘’과 구분되는 ‘심리적 리얼리즘’이다. 바쟁의 주장을 초상사진에 적용하자면 자신의 초상에 대한 인간의 또 다른 욕망은 바로 ‘이상적 모습’으로 향하는 셈이다. 실제 모습과 다소 거리가 있더라도 자신이 욕망하는 이상적 모습을 초상사진에서 보고 싶어 한다고 할 수 있겠다. 19세기의 명함판 사진이 대중적 성공을 거두었던 이유도 거기에 있다. 디스데리는 가장 광범위한 고객층이었던 부르주아 시민 계급이 정확히 무엇을 요구하는지 알고 있었던 것이다.

허바허바사장 홈페이지에는 가족사진, 웨딩사진, 베이비 포토를 비롯하여 분위기 있는 인물사진 등이 카테고리로 구분돼 있다. 거기에는 화목한 가족, 로맨틱한 커플, 귀여운 아이의 모습 등이 상징으로 등장한다. 현실의 삶과 다를지라도 사진을 통해 보고 싶은 모습을 영속적인 이미지로 구현해 놓았다 하겠다. 사진관의 특별함은 그런 것이다.

 

박평종 (중앙대학교 인문콘텐츠연구소 연구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