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명덕이 찍은 뒤태의 초상사진과 조선후기 풍속화
11/12/2018
/ 이태호

주명덕, 법정스님, 1976

주명덕은 우리시대 사진 예술계의 원로이다. 또한 자타가 공인하듯이, 주명덕의 사진 작업 자체를 그대로 20세기 후반의 한국사진사로 여겨도 좋을 만큼의 내로라하는 거장이다. ‘기록성과 사실성’을 사진작업의 정점으로 삼아 한국의 리얼리즘 사진을 발전시켰고, 민족사진으로서 한국적인 영상을 재창조한 대표 작가로 손꼽을 만하기 때문이다. 

주명덕의 인물초상사진은 주로 한국적인 것에 천착했던 시절에 찍은 만큼, 한국인의 얼굴을 찾으려한 노력과도 맞닿아 있다. 소탈하거나 혹은 카리스마 넘치는 유명 인물들 초상에서 당대의 시대적 이미지가 읽혀지는 반면, 작고 작가의 경우에는 추억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다. 초상사진의 기능과 역할을 새삼 수긍케 한다. 또 친분을 쌓으면서 개개인의 성격을 정확히 표출한 초상에서 주명덕의 개성적인 예술성을 엿볼 수 있다. 대상마다의 의미를 부여하는 배경이나 소품 에피소드의 설정, 그리고 자세와 표정잡기가 그러하다.

그렇게 많은 사람들을 만났고 무수히 카메라에 담아왔음에도 불구하고, 주명덕은 항시 “인간을 찾기 어렵다”고 되뇌인다. 그래서인지 그는 초상사진들을 자신의 예술작품으로 선뜻 내놓기를 꺼리는 듯하다. 이는 까탈스러운 주명덕의 성격을 반영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대상 인물에 대한 존경심이나 마음을 터놓을 수 있는 우정이 형성되지 않으면 쉽게 동화되지 않는 이유도 있을 터이다.

주명덕이 찍어 온 초상작품의 진수는 성철스님의 인물사진들에 있을 것이다. 성철스님(1912~1993)은 우리 시대 불교계의 큰 성직자이다. 주명덕 스스로도 큰 스님의 생존 모습을 기록한 프로젝트를 대단히 영광스러워 한다. “그동안 물 흐르고 꽃 피는 봄이나, 천둥치고 폭우 쏟아지는 여름이나, 울긋불긋 온 산이 단풍진 가을이나, 살을 에이고 눈 쌓인 얼음길의 겨울이나, 궂은 날, 좋은 날을 가리지 아니하고, 천리 길을 멀다 않고 해인사와 백련암을 오르내리며 큰 스님의 모습”(원택,「책을 엮고 나서」『포영집』) 을 촬영한 것이다. 근 3년여 해인사의 풍광이나 문화유산과 함께 칼라와 흑백사진으로 찍은 성철스님상은 대형사진집인『포영집(泡影集)』(장경각, 1988)으로 출간된 적이 있다. 

초상사진의 진정한 가치와 역할은 역시 정좌한 정면상에서 찾을 수 있다. 마치 전통초상화를 닮은 컬러나 흑백 작품들에는 성직자의 위용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주명덕은 큰 스님의 성직생활은 물론, 일상들을 빼놓지 않고 카메라에 담았다. 마루턱에 걸터앉아 명상에 잠긴 표정이나, 사원의 뒤안길을 소요하는 뒷모습도 포착했다. 근엄한 큰 스님의 외모보다 오히려 인간다운 자태에 성직자의 진면목을 드러내었다. 그래서 걸작이 되지 않나 싶다. 특히 뒷모습의 포착은 주명덕 초상사진의 또 다른 일품이다. 

뒷모습의 초상사진은 성철스님보다 10년 앞서 찍은 송광사의 <법정스님>(1976)에서도 시도 되었다. 밀짚모자 차림에 빈손으로 불일암 오솔길을 오르던 시절 법정 스님의 뒷모습을 담은 것이다. 그야말로『무소유』(범우사, 1976)의 검약한 형상미가 물씬 풍긴다.  

 주명덕, 서양화가 김종학, 1966

10여년 전에 촬영 한 <화가 김종학>(1996)도 뒷모습의 초상사진이다. 설악산의 작업실을 마련하고 “자연을 마음대로 그린다”는 김종학은 찬란하고 환상적인 색채의 ‘꽃바다’로 최근 인기를 얻은 작가이다. 주명덕은 그 화려함보다 김종학의 뒤태에 마음이 끌린 듯하다. 설악산을 산책하다 마른 풀꽃들을 손에 쥐고 귀가하는 뒷모습은 김종학의 어떤 점을 드러내고자 했을까. 그 마른 풀꽃의 그림들도 남기고 있는데, 혹여 김종학이 애장했던 조선 목기의 간결한 감각은 아닐지.  

이처럼 뒷모습의 인간을 포착한 작품으로는 조선후기의 풍속화에서 찾아볼 수 있다. 그 대표작으로 윤두서의 손자인 윤용이 봄꼴을 베러 나선 아낙네의 뒷모습을 그린 <협롱채춘(挾籠採春)>(간송미술관 소장)이 떠오른다. 인간의 뒷모습을 초상의 소재로 삼았다는 자체부터 상식 밖의 일이다. 그런데 뒷모습을 본다는 것은 여러 가지를 상상케 한다. 그 중에서 인간이 자신을 반추하는 의미로도 해석된다. 주명덕의 뒷모습 초상사진들도 같은 맥락으로 볼 수 있겠다. 이같이 그림에 사람의 뒤태를 담는 구성방식은 또한 이태리의 르네상스 회화에서 그 연유를 찾는다. 중세의 절대 신으로부터 인간을 회복하는 위대한 시대의 형식미이다.  

 

*이태호, 「긴 호흡의 상념들, 깊은 침묵이 흐른다-따스한 감성으로 기록한 주명덕의 초상사진」 ( 『주명덕』, 대림미술관, 2008.)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