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벽, 모니터
10/17/2018
/ 박평종

사진의 수용과 유통방식이 바뀌고 있다. 전통적으로 사진은 책과 같은 인쇄물의 형태로 유통되다가 현대미술과 맞물리면서 벽에 걸리기 시작했으며, 디지털 테크놀로지의 발전으로 모니터를 주 매체로 채택했다. 책과 벽, 모니터는 현재 사진의 수용과 유통을 지배하는 대표적인 매체다. 이 세 가지 방식이 균형을 이루며 공존하고 있지만 상황이 달라질 것임을 예측하기란 그리 어렵지 않다. 머지않아 모니터가 사진의 유통을 지배하게 될 것임이 틀림없다. 물론 책과 벽은 여전히 사진의 유통에 중요한 매체로 남게 될 것이다. 하지만 그 범위는 제한적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왜 그럴까?
사진은 발명 직후부터 책과 친화력이 강했다. 복제가 불가능한 다게레오타입을 제외하면 ‘본래’ 사진술은 이미지 복제를 위해 탄생했다. 니에프스의 엘리오그라피가 그 기원이고 탈보트의 칼로타입도 본래 복제 기술로 출발했다. 초상화를 대체하면서 명맥을 유지했던 다게레오타입은 오래 존속할 수 없었다. 복제가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이후 대부분의 사진은 복제 이미지로 유통됐다. 사진인쇄가 중요했다. 관건은 잉크다. 말하자면 은염 감광물질을 입힌 인화지를 대량으로 복제하려면 경제성이 낮았기 때문에 잉크 인쇄를 사진 복제에 적용시켜야 했다.
이를 위해 개발한 방법이 제판법이다. 금속판에 은염 유제를 발라 원판의 사진 이미지를 복제한 후 산으로 부식시켜 홈에 잉크를 묻혀 여러 장을 인쇄하는 방법이다. 제판법이 등장하면서 사진은 대량으로 인쇄되기 시작했다. 그러나 제판법의 문제는 활자와 사진을 동일 지면에 인쇄할 수 없다는 데 있다. 사진제판은 오목판, 활판은 볼록판이었기 때문이다. 활자와 사진을 동일지면에 인쇄할 수 없었던 탓에 활자를 인쇄한 지면에 제판법으로 인쇄된 사진을 오려 붙이는 방법을 활용하기도 했다. 활자와 사진을 함께 인쇄하는 방식은 망판법이 상용화되면서 일반화됐다. 신문, 잡지에 사진이 대량의 복제 이미지로 유통되는 것이다. 당연히 책에도 망판인쇄를 통한 사진이 등장한다. 이른바 인쇄매체의 시대다.
현대미술이 사진을 수용하면서 ‘예술사진’의 시대가 열린다. 미술 제도가 사진을 수용하기 전까지는 지면이 ‘거의’ 배타적인 사진의 유통 매체였지만 이제 상황이 달라졌다. 예술작품으로서의 사진은 지면 대신 미술관 벽면에 걸리는 것이다. 이는 다른 한편으로 전통적인 인쇄매체가 위축되는 현상과도 관계가 있다. 인터넷 환경의 정착과 디지털 카메라의 보급으로 인쇄매체에 사진을 공급했던 이미지 생산자들은 난관에 봉착했다. 지면이 급속히 줄어드는 상황에서 그들은 벽면을 찾아다녀야 하는 지경에 처하게 됐다. 그렇다면 모니터는 어떤가?
신문, 잡지와 같은 ‘전통적인’ 지면은 디지털 매체에 점차 자리를 내어주고 있다. 우리는 이미 PC 모니터나 휴대폰 액정화면을 통해 대부분의 시각 정보를 수용하고 있는 형편이다. 장단점은 있다. 우선 모니터는 시각 정보를 ‘물질적으로’ 보존하지 못한다는 치명적인 약점을 갖고 있다. 하지만 지면이나 벽면에 비해 다른 많은 풍부한 장점을 갖고 있다. 우선 디지털 데이터는 아날로그 데이터에 비하면 복제에 소요되는 시간과 자본의 양에서 현격한 차이가 있다. 원본 이미지와 복제 이미지의 품질에도 차이가 없다. 물론 고품질 데이터 경우는 사정이 다르지만 말이다. 디지털 이미지를 유통시키는 매체에 대한 접근성도 훨씬 좋다. 인쇄매체와 달리 인터넷 매체에 이미지를 유통시킬 수 있는 방법은 무한히 열려있다. 물론 모니터는 종이에 비해 훨씬 고가지만 누구나 크고 작은 모니터 한 두개씩은 갖고 있는 시대다. 그렇게 모니터의 시대가 왔지만 여전히 지면과 벽면도 우리 곁에 있다. 책과 벽, 모니터가 지닌 장단점을 면밀히 따져 효과적으로 활용해야 할 때다.

박평종(중앙대학교 인문콘텐츠연구소 연구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