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창작을 하든 무슨 상관인가?
07/31/2018
/ 박평종

창작자의 개념이 모호해지고 있다. 수많은 저작권 분쟁 사례들이 그 점을 입증한다. 그에 따라 창작자를 ‘법적으로’ 어떻게 규정할 것인지, 저작권을 어디까지 보호할 것인지도 골칫거리다. 특히 인공지능이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고, 작곡을 하는 시대가 오면서 문제는 더욱 복잡해지고 있다. 이른바 ‘생각하는 기계(Thingking machine)’가 예술작품을 만들어낸다면 그를 창작자로 인정해야 할 것인가?

현행 저작권법은 저작권자를 독창성의 원천으로서의 창작자로 규정하고 있으며, 그 범위를 ‘인간 저자’만으로 한정한다. 예컨대 2011년 사진작가 데이비드 슬레이터가 인도네시아에서 멸종 위기종 원숭이 사진을 찍다가 카메라를 빼앗겨 발생한 사건을 보자. 사진작가의 카메라를 빼앗아 달아난 원숭이는 여러 장의 셀카를 찍었는데, 사진작가는 자신이 찍은 사진과 원숭이가 찍은 사진을 섞어 작품집으로 출간했다. 슬레이터는 2014년 원숭이가 찍은 사진을 무단으로 게재한 위키피디아에 사진 삭제를 요구했고, 이에 저작권 소송이 진행됐다. 법정은 비록 원숭이는 저작자가 될 수 없지만 사진에서 발생하는 수익의 25%를 멸종 위기종 원숭이 보호에 사용하라고 판결했다. 여기서 관건은 인간만이 저자일 수 있으며 동물이나 로봇은 저작자가 될 수 없다는 점을 명확히 했다는 것이다.
본래 저자(author), 창작자(originator) 개념은 저자가 저작물의 소유자임을 법적으로 보호하려는 소유 개인주의(possessive individualism)에 뿌리를 두고 있다. 그리고 저자가 자신이 생산한 저작물에 대해 배타적 권리를 가지려면 타인의 그것과 명확히 구분되는 독창성(originality)이 있어야 했다. 오늘날 거의 대부분의 저작권 분쟁에서 결정적 기준이 되는 요소가 그것이다. 그런데 법적으로 보호받는 창작자들의 작품이 그 ‘독창성’이라는 것을 진정 갖고 있는가?
알고리듬과 머신러닝을 활용하여 예술작품을 생산하는 인공지능 ‘창작기계’는 아마도 가까운 미래에 인간 예술가들보다 훨씬 창의적인 작품을 만들어낼 수 있을 것이다. 독창성의 차원에서 기계는 인간을 능가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빅데이터를 분석하여 무엇이 ‘없었던 작품’인지 쉽게 가려낼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현재의 ‘창작기계’, 예컨대 넥스트 렘브란트와 같은 인공지능은 화가의 화법을 머신러닝 학습으로 분석하여 그와 유사한 그림을 그리는 차원에 머물러 있다. 그런데 관건은 이 기계들을 ‘어떻게’ 프로그램 할 것인가에 있다. 만약 프로그래머가 전혀 새로운 알고리듬을 적용하여 규칙에서 벗어난 작품을 산출하도록 프로그램 한다면 사태는 달라질 수 있다. 그렇게 생산된 ‘작품’의 저자는 누가 될 것인가? 이미 예술가와 프로그래머의 적극적인 협업이 이루어지고 있으며, 그들은 그에 따른 작품의 공동저자다. 컴퓨터가 저자가 되지 말라는 법이 없다.
테크놀로지의 발전에 힘입어 카메라의 성능은 나날이 고도화되고 있어 이제 ‘누구라도’ 물리적 품질이 뛰어난 사진을 생산할 수 있다. 심지어 원숭이도 셀카를 찍고, 카메라를 도둑맞은 사진작가는 원숭이가 ‘대충’ 찍은 그 사진을 모아 작품집으로 출간하지 않았는가 말이다. 그보다 고도의 복합적인 사고가 가능한 기계가 카메라를 잡는다면 누구도 예상치 못한 결과가 나올 수 있다. 인간 사진가의 작품보다 훨씬 ‘창의적인’ 사진을 그가 생산해 낼 날이 멀지 않았다. 이미 인공위성이나 드론, CCTV 카메라는 저널리즘의 영역에서 인간을 따돌린 지 오래다. 창의성의 척도에 대해서도 근본적으로 재고할 때가 됐다. 그리고 인간만이 저자일 수 있다는 뿌리 깊은 통념에 대해서도 반성해 보아야 한다. 하나의 저작물이 진정 가치 있다면 누가 생산하느냐는 부수적인 문제이기 때문이다.

 

박평종 (중앙대학교 인문콘텐츠연구소 연구교수)